묵호항 (2017.5)

 

묵호항은 꽤 큰 항구로 보인다. 묵호항으로 네비게이션을 찍으면 여객터미널이자 배가 드나드는 진짜 항구로 들어선다. 울릉도로 가는 여객선을 타는 터미널과 여객터미널이 분리되어 있다. 묵호등대는 상징물이 되어 그 주변에 등대오름길과 수변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묵호항 수변공원에서는 방파제가 이어져 있다.
이 동네 사람들은 내항이라고 부르는 곳에 바다쪽으로 다리를 놓았다. 파란색 금속펜스를 두른 전망대에는 동네 사람들이 몰려와 낚싯대를 던진다.
주인아저씨를 따라 나온 강아지가 딸랑딸랑 방울소리를 내며 바다를 들여다 보다가 뒷걸음질 쳤다. 엄마 아빠를 따라 나온 어린아이는 종이박스 안에 호일로 감싼 치킨을 먹으며 등대며 배의 불빛을 바라봤다. 오는 7월 묵호항엔 야시장이 열린다. 청년 판매자를 모집한다는 현수막이 있었다. 묵호항을 바라보는 언덕빼기엔 작은 마을이 있는데 논골마을이라며 벽화도 그리고 산책로를 조성해 놓은 모양이다.
근처 동해항은 물류가 오가는지 인적이 드문데 비해 묵호항은 사람이 많다. 묵호역에서 묵호항으로 들어가는 길엔 건어물 도매상과 묵호시장, 횟집이 늘어서 있다. 묵호항부터 시작된 해안도로는 망상해변까지 이어지는데 해안도로를 따라 숙박업소와 식당, 까페가 끊이지 않고 늘어서 있다.
묵호항에서 가면 인근 회센터에서 저녁을 먹는데 횟값이 싼 편은 아니다. 묵호항 주변의 회센터는 모두 비슷한 쌈장을 주는데 생선뼈를 삭혀 막장에 담근 것으로 보이고 생와사비를 주는 집이 없었다. 반찬에 꼭 찹쌀떡을 두어개 주는데 달달하다. 서빙하는 이들이 딱히 정감가지 않아 자세히 물어본 적은 없다.
아침에는 늘 화성곰치국에 가서 곰치국을 먹었다. 이 곳의 주인은 늘 밖에 서서 곰치가 가득찬 수조앞에서 뭔가를 하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투명한 수조에 들은 커다란 곰치에 관심을 보이면 곰치에 대해서 마구 설명을 하기 시작한다.
곰치는 심해에 살아서 홍게나 새우 등 사람 몸에 좋은 것만 먹고 산다며, 그러니 이 곰치가 얼마나 영양가가 있겠냐는 논리다. 곰치는 살이 흐물흐물하고 생긴 게 못나 사람들이 잘 먹지 않았던 생선인데 부산 부근에서 신김치국에 곰치를 넣기 시작해 곰치국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묵호항 주변에는 곰치국 하는 곳이 가장 많다.
화성 곰치국 옆에는 4월에 새로 문을 연 마젠타라는 커피집이 있다. 인근에서 눈에 띄게 예쁜데 벽면은 사이언 색깔이고 간판은 마젠타다. 인쇄나 디자인을 한 사람들은 CMYK 색상표를 떠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집은 8시 조금 넘어 문을 여는데 커피 맛도 괜찮은 편이고 젊은 커플이 운영한다. 몇 번을 마주치자 스쿠버다이빙을 해서 12kg짜리 문어를 잡아 동네 잔치를 한 얘기며 미역철이라 물에 들어가지 않고 바닷가에 다가온 것만 건져 말려도 맛있다는 얘기를 한다. 마젠타는 민박도 겸하고 있는데 평일엔 13만원, 주말엔 18만원으로 주변 민박에 비해 한참 비싼 가격이다.
인근엔 민박과 펜션이 많은데 민박은 비수기 평일 2만원, 주말 5만원 선이고 펜션이라 간판을 걸었어도 민박과 비슷한 구조면 가격대도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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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에 떡하니 자리잡은 동해비취호텔과 꿈의궁전호텔은 손님이 늘 많은지 친절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꿈의궁전호텔 안에는 해수사우나가 있는데 목욕탕 안에서 바다가 보이긴 하지만 습기로 유리창이 뿌얘서 딱히 경관을 즐기기 어렵고 시설은 동네 오래된 목욕탕 정도다.
북쪽으로 해안도로를 타고 걸어 올라갈 정도 거리에 어달항이 있는데 어달항은 낚시를 하기 좋다고 조성해놓은 곳이다. 대한민국에 낚시꾼들이 그리 많은 줄 최근에 처음 알았다.
대진항을 지나 망상해수욕장까지 올라가면 오토캠핑장이 있어 북적인다. 봄이 되면서부터 카라반을 빌리는 사람과 캠핑장에 텐트를 치는 가족들이 많다. 망상해수욕장까지 철길이 이어져 있다. 해안철도는 옥계에서 내륙으로 조금 들어갔다가 바로 정동진으로 향한다. 해안철도는 남으로는 삼척역까지 이어져있다.
토요일 저녁 묵호항 인근엔 중년의 관광객들이 가득하다. 열 명 남짓한 남녀가 어울려 회에 술을 마시며 소란스럽게 떠든다. 깔깔대는 중년 여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사는 게 별 거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횟집에서는 너무 소란스러워 우리 주변에 앉은 내 또래 여자가 정중하게 항의를 하기도 했다. 정중한 항의는 순식간에 데시벨을 낮춰놨고 20대의 젊은 커플들은 고소하다는 듯이 고개를 숙이고 킥킥대며 웃다가 밖으로 나가 담배를 피웠다.
관광버스가 저녁나절에 묵호항에 더러 들어오는데 한무리의 등산복 중년들은 도대체가 당할 재간이 없다. 자신감이 가득한 목소리와 거슬릴 정도로 거침없는 목소리가 외려 허탈하다. 사는 게 별 재미가 없는 순간이 이어지면 일부러 크게 웃어보는 것도 괜찮겠다. 주로 그들을 이해하고 싶지만 자주, 내 일행과 대화가 불가능해지곤 한다.
동해를 오가는 내내 휴게소에서 그들을 만난다. 알록달록한 아웃도어를 입은 중년의 남녀들은 딱 달라붙는 바지에 잘 가꿔온 몸매를 뽐낸다. 배가 볼록 나온 아재들도 딱 달라붙는 드라이핏 셔츠를 자신있게 입는다. 가끔 그들이 팔짱을 끼고 지나가며 하는 말을 엿듣게 될 때가 있는데 한 사람의 삶을 가늠하려는 오만을 범하게 된다.
“애들 다 키우고 여우고 돈 쓸 데도 없으시겠네요. 호호호.” 와 같은 대화에 담배연기가 목에 걸릴 만큼 켁켁대고 웃게 된다. 사람의 욕망은 늙지 않을 것이고, 나의 세상과 그들의 세상이 그닥 멀지도 않다. 불과 몇 년 후면 젊은이들이 나를 보고 “아웃도어 입은 중년의 어느 갱년기 아줌마” 라고 칭하겠지.
그들은 휴게소에서도 늘 즐겁다. 깔깔대는 웃음소리는 사방에서 휘몰아치고 쿵짝대는 고속도로 테이프 뽕짝에 맞춰 스텝을 밟기도 한다. 여럿이 있으면 용감해진다고, 부끄러울 것도 없는 그들의 용기가 때론 부럽기도 하다. 각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모두 다르니, 그저 오늘 하루 즐겁다면 그것으로 족할 것이다.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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