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고 팔고 버티고

050209_dong07

 

2층의 키가 작은 남자는 남씨였던가, 그 사람은 화가라고 했다. 그는 키가 작으니, 창문 없는 고시원 방이 작지 않을 거 같았다. 키 작은 사람을 부러워하는 일도 생긴다. 유화에 쓰는 특유의 역한 기름내 풍기며 그가 그리는 그림을 7호실 오 씨는 “나까마 그림”이라고 불렀다. 그는 두어 달 고시원에 있다가 떠난 것 같다. 낮에는 막노동을 했고 가끔 일이 없는 날, 그러니까 비가 오거나, 노동을 팔지 못하고 봉고차에 실려 가지 못한 그런 날, 그는 고시원 방에서 물감과 테라핀 냄새를 풍겨가며 그림을 그렸다.
 
그는 연장이 들었을 거 같지도 않은 반달모양의 가방을 메고 새벽에 고시원을 나섰다. 남대문 경찰서를 지나 퇴계로쪽 남대문 시장 앞 육교 아래 가면 드럼통에 군불을 땐 사내들이 여럿 모여 있었다. 인력시장이 짧게 형성되면 거기 모인 사내들은 차례도 순번도 맥락도 이유도 없이, 자기 자신을 가장 늠름하게 내보이려 애쓰다가 봉고차에 실려 품을 팔러 갔다. 하루를 먹고 살 수 없는 날, 나까마 화가는 그림을 그렸다. 그의 그림은 어디론가 또 팔려간다 했다.
 
품을 팔고, 그림을 팔고, 생명을 박박 갈아 하루를 버티면 또 다시 하루가 왔다.
우물에 빠져 둔탁한 머리통이 그 바닥에 닿을 때, 운 좋게 다른 세상에 펼쳐지면 좋겠다고, 그가 이사나가는 짐을 보며 생각했다.
 
1995년쯤의 이야기와 2005년쯤의 사진을 가지고
2017년에 쓴다.
사진은 용산구 동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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