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의 시간, 추모의 세월

롤랑 바르트는 어머니를 잃고 난 다음날부터 애도일기를 썼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에게 애도가 얼마나 필요한 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던 것이다. *‘바르트의 애도일기는 일반 노트를 사등분해서 만든 쪽지 위에, 주로 잉크로 때로는 연필로 일기를 써 나갔다. 그의 책상 위에는 이 쪽지들을 담은 케이스가 항상 놓여 있었다.’ 바르트의 애도일기는 현대저작물 기록 보존소에 보관되어 있었다. 나탈리 레제와 베르나르 코망의 공동작업으로 쪽지는 원고가 되어 책으로 나왔다. 한국에는 웅진출판사에서 2012년에 책으로 냈다.

책장에서 이 책을 꺼내 무심결에 펼친 페이지에는 이런 글이 있었다.

▲ 12.9.애도: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태, 그 어떤 방어수단도 없는 상황.

28일 오후에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의 고장난 안전문을 고치던 청년이 열차와 스크린도어 사이에 끼어 숨졌다. 토요일 저녁에 혼자 작업했다. 2인 1조를 지키라는 매뉴얼은 애초에 직원이 없어 지킬 수 없었다. 공사시간동안 열차운행은 쉬지 않았다.
5월 30일 SNS에는 사망한 김 씨의 유품사진이 공개되었다.

▲ 사망한 김씨의 가방에서 나온 유품. 그는 19살 생일을 하루 앞두고 세상을 떠났다.

SNS에는 사람들이 고인의 가방 속 유품 사진을 공유하며 분노하고 한탄했다. 가방 안에서 포장을 뜯지 않은 컵라면과 편의점에서 주는 나무젓가락, 집에서 가져왔을 숟가락이 나왔다. 지금 사람들이 애도하는 방식이다. 언제부턴가 이 나라의 애도엔 분노와 한탄, 자조가 뒤섞였다. 지하철 구의역에는 추모 쪽지가 붙기도 했고 국화도 놓였으나 이내 메트로 직원들에 의해 수거되었다고 한다.
2015년 8월에는 지하철 2호선 강남역에서, 2014년 4월에는 독산역에서, 2013년 1월엔 지하철 2호선 성수역에서 같은 사고로 작업자가 죽었다. 30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는 서울메트로노조 오선근 안전위원이 인터뷰를 통해 여태까지의 사고는 모두 2호선에서만 일어났고 그 외 스크린도어에 관련된 사고 모두 서울지하철 1호선에서 4호선사이에서만 일어났다고 말했다.

지난 봄, 내가 사는 아파트엔 외벽 도색작업이 있었다. 도색작업이 있을 예정이니 창문을 닫고 커텐을 치라는 방송이 있었다. 외벽 도색작업은 기가 막혔다. 아래는 화단 그대로, 맨 땅에 아무런 안전장치가 없었다. 작업자는 줄 두 개에 매달려 12층부터 페인트칠을 하고 있었다. 관리사무실에 전화해 안전장치에 대해 물었다. 한참을 기다려 받은 대답은 이런 거였다.
아파트 주민협의체 (대부분 입주자대표회의다)에서 관리사무실에 외벽도색을 진행하도록 하고 관리업체는 건설사에 외벽도색을 의뢰하고 건설사는 하청업체에 도색작업을 의뢰하고 하청업체는 작업자를 찾아 외벽도색이 이루어진다. 관리사무소 직원은 맥 없는 목소리로 민원이 있었다고 말해보겠노라 했다. 입주자에서 관리업체, 건설사, 하청업체를 건너는 사이 도색작업은 끝이 났다.

지하철안전문공사도 비슷한 과정이 있다. 고장이 난 문이 있고, 지하철공사가 있고, 서울시가 있고, 안전문 설치업체가 있고 하청업체가 있고 비정규직과 계약직 노동자가 있다. 입찰가격에 10%을 깎아야 하는 암묵적인 룰이 있고, 예산을 줄이기 위해 더 싸고 더 빠른 업체를 찾고 업체들은 수익을 내기 위해 안전비용을 삭감하는 사이. 사람이 죽고 다친다.

주목할 것은, 애도의 물결이다. 이제 사람들은 잊지 않고 저 고매한 철학자가 했던 것처럼 쪽지에 애도의 글을 적는다. 사고 현장을 찾고, 기억하기 위한 물품을 만들어 몸에 지닌다. 온라인에는 추모공간이 만들어지고 사람들은 항의한다. 타인의 고통에 더욱 공감하는 사회가 되었다는 것이 성숙의 결과일까 의심한다. 함께 분노한다는 것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무고한 죽음이 사람들의 삶 가까이 다가온다. 옆 사람의 숨결처럼, 고인의 슬픔이 내 품안에 들어선다는 건, 모두들 견디고 있다는 얘기다.

견디는 자들이 한데 모여 나의 팔을 엇갈리게 뻗어 옆 사람의 손을 잡아야, 대오는 단단해진다. 한 사람의 죽음이 씨앗이 되어 세상으로 흩어질 때, 영혼이 세포가 되어 공기를 떠돌 때, 우리는 옆 사람의 손을 꽉 잡고 걸어야 한다.

책이 된 《애도일기》의 해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번역이 끝났어도 여전히 번역이 안 된 채로 마음 안에 남아 있는 단어 하나가 있다. ‘슬픔’이라는 단어가 그것이다.” 시대의 슬픔은 종식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이 살아 남는 한 이 슬픔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살아있는 인간이 해야 할 추모는 기억하고 따져보는 것이다. 애가 닳도록 쓰리고 아파도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가야 할 곳은 더 이상의 희생자를 만들지 않겠다는 마음을 모으는 일이다. 살아남은 자들의 죽음이 가야 할 곳은 “기억했다”는 기념비 앞이다. 떳떳하게 죽기 위해 오늘을 견디는 모두에게 더 나은 내일이 있길 소망한다. 우리가 잊지 않는다면.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별표 부분은 책 서문에 적힌 문장을 발췌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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