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영결식이 있던 날 

영결식이 2시부터 엄수라 했다. 1시 30분쯤 서울대병원에서 운구차가 출발한 모양이다. 광화문 부근에서 한참을 기다렸다. 신호가 몇 번이나 바뀐 뒤에 광화문을 겨우 지났다. 

남산터널로 올라가는 을지로를 지나다가 갑자기 차선을 바꾸는 다마스 때문에 급브레이크를 밟았고 신호에 다시 걸렸다. 붉은 신호등 아래로 다마스보다 커다란 종이짐을 실은 리어카가 두 대나 지나갔다. 눈이 내렸고 리어카위의 박스는 젖을 것이다. Kg으로 계산을 할텐데 젖은 박스는 어떻게 무게를 달까. 

리어카를 끌고 가는 남자들의 늙은 얼굴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라디오에서는 영결식을 중계하고 있었다. 

조국과 국민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온 몸으로 민주화를 이룩해 낸 전직 대통령에 대한 찬사가 이어졌다. 

운구차는 호위를 받으며 커다란 길의 교통을 통제하고 거침없이 달렸을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을 죽인 권력자도 그러했듯이 변절을 했거나 배신을 했거나 권력자로 마감하면 그 뿐이다. 

권력자의 장례는 국가가 치르고 국민들은 불편을 감수하고 당연한 듯 그들을 애도한다. 

당연히 받을만한 일이 존재하는가. 

몇 년전, 사진 한 장 제대로 갖지 못한 노인들의 영정사진을 찍어 드리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왜 그런 꿈을 가졌는지 알 수 없으나 오늘에서야 비로소 어느 단체를 통해 무의탁 독거노인이며 기초생활수급자인 분들의 영정사진을 찍었다. 찍기 싫은데 찍어야겠다고 한 분의 표정은 두려움에 가득찼고 관속에 바카스를 넣어달라던 어르신은 옷을 한 벌 더 챙겨와 환하게 웃었다. 

그 중에 건강이 여의치 않아 다른 일은 못하고 야간에 재활용품을 수거해 생계를 이어나가는 이가 있다. 리어카가 지나갈 때 그 사람을 떠올렸다. 

자기 사람을 위해, 자기 인생을 위해, 자기 밥 한 그릇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고 사는 인생도 있나. 

사기를 치고 구걸을 하고 도둑질을 하고 몸을 팔아도, 타인의 밥벌이에 기생하며 남의 등 처먹고 사는 인간도 그 자신으로써는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 것이다. 달리 다른 방도가 없거나,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을 때, 세계는 점점 좁아져 북극바다에 녹아가는 얼음판 만한 세상 위에서 오돌오돌 떨며 버티는 것이다. 

눈이 퍼붓고 군사독재에 항거했고 결국 권력자로 기억될 한 사람이 떠난 날, 나는 텅 빈 빈소조차 갖지 못할 뻔한 사람들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간다. 

 알량하게도 누군가의 불행을 딛고 쓸모있는 사람이 되어간다는 생각에, 어떤 핑계를 찾아서라도 오랫동안 울고 싶은 날이다. 

간간히 햇빛이 드나들던 하늘이 어둑해진다. 

내가 말을 하는 모든 이유는 누군가와 따뜻하게 마주보며 웃고 싶어서다. 그건 나 뿐 아니라, 세상 모든 불행도 그러하리라. 

2015년 11월 26일. 

어떤 영결식날의 소회.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