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10대는 뭘 주도적으로 할래도 할 수가 없는 시기라 그냥 묶여서 노예처럼 산 게 분명하다.
아니라고 해봤자, 그 때 온전한 자기 선택이 어디 있었나. 무서운 일이다. 그게 습관이 되어버렸으니.
성인이 되기 전에 선택과 자기의사표시를 억제당한 채 자라나서 성인이 된다는 건 판단과 정서적 장애를 수반하고 삶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는 말이다.

20대가 되어 성인이 되어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술 마시고 저임금 고노동에 기꺼이 투신하는 일이다. 20대는 너무 어려서, 또는 어리지 않아서 아무 것도 가다듬지 못한 채 바쁘게 뛰어만 다녔다.

좌절할만큼 좌절했다고 느껴서 자신감이 어느 정도 붙은 게 30대였다면, 그 때는 대체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 지 알 수가 없었고 어떤 날엔 신문지를 밟고 서서 베란다 밖을 내다보았고 발톱을 깎다가 멍하니 눈의 촛점을 풀어버리기도 했다. 오늘만 산다는 대사는 원빈의 전유물이 아니라, 어제의 일도 기억나지 않는 무기력에 있었고, 분명히 길을 잘 못 들어선 거 같다는 불안함, 삶을 더 이어갈 수 없을 것 같은 공황에 시달렸다.

그러면서 상처받은 것들을 하나도 해결하지 못했고 매일, 오늘 하루만 버티자고 눈을 감다가 마흔이 되어버렸다.

올 해의 일어난 수많은 사건들은 내가 지난 만 39년간 저질렀던 혹은 믿어왔던 것들의 결과물이다.

끝을 맺지 못했던 일과
한 발만 걸치고 툭하면 내빼려던 도망자정신과
나를 봐달라는 유치한 일곱살의 고착과
돌이킬 수 없는 가족과의 결별을 애도하지 못한 일과
좋은 사람이 되게 위해 쉽게 지갑을 열었던 습관과
강인해 보이기 위해 뒤집어써서 아예 녹아 눌러붙어버린 플라스틱 가면과
소중한 것이 생기면 상실이 두려워 뒷걸음질 쳤던 일과
상처입은 고양이처럼 몸을 옹크리고 앉아 살갗이 짓무르도록 햛아대던 일들이

올 한 해에 모두 결과물이 되어 나타났다.

많은 사람을 만난 만큼 소중한 사람과 헤어진다. 하나의 가치를 버린 만큼 또 다른 생각을 줍는다.

아침 꽃을 저녁에 줍는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기억도 나지 않는 산문을 다시 찾아 읽어야겠다.

2014.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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