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1. 이른 저녁 들른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가 들렸다.

– 나는 딱 육십까지만 살래.
– 어머 언니 안돼. 우리가 언니 보고 싶을 때 아무 때나 봐야돼.
– 육십은 너무 젊지 요새는.
– 곡기를 딱 끊으면 된다더라. 나는 그렇게 죽을꺼야.
– 아 진짜 왜 그러니?
– 난 자살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
– 어머 무슨 소리야! 하나님 믿는다는 사람이 그런 소리 해도 돼? 자살은 죄악이야.
– 그러니까 곡기를 끊는 게 제일 좋은 거 같아. 난 추해지기 전에 죽고 싶어.

자기 의지로 죽고 싶다는 여자는 병원 간병일을 했던 경험을 이어서 말하고 있었다.
내 뒤에는 남녀가 앉아 있었는데 지방대 나와 석사를 하면 인정을 받을 수 있냐고 여자가 묻고 있었다. 듣고 있자니 심사가 뒤틀렸다.

2. 며칠 전 아이와 긴 산책을 하는데 아이가 다시 물었다.
엄마 사람은 어차피 죽을 건데 왜 살아?
일년째 이어지는 질문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 잘 죽으려고 살지.
– 뭔 소리야.
– 엄마는 그렇게 생각해. 일단 태어난 건 되돌릴 수 없잖아. 그럼 어떡해. 기왕 태어났으니까 되돌릴 수 없는 건 포기하고. 죽는 날 사람들이 이 사람 참 잘 살다 갔다고 죽어서 아쉽다고 얘기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살아야지.
아이는 알아듣는 듯이 조용해졌다.
– 너 할머니 장례식 기억나? 손님이 정말 많이 왔지?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할머니가 돌아가신 걸 슬퍼했어. 그건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 그만큼 잘 사셨다는 뜻이야. 그게 쉬운 게 아니야. 평생 나쁜 짓을 하고 산 사람이 죽었다고 생각해봐. 사람들은 나쁜 놈 잘 죽었네. 하고 만세를 부를 수도 있잖아.
– 축제를 할 지도 몰라.
– 그러니까.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잘 살아야 하는거지. 엄마는 그렇게 생각해.

3. 에밀 시오랑의 책의 부제는 ‘태어남의 불행에 대해’이다.
어차피 인생은 그런 거라는 거다. 염세주의라기 보다 “인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삶의 수많은 생채기들은 발목을 잡고 늘어지지만 그래도 하루의 10초 정도, 행복감을 느낄 때 사람들은 웃으며 살아가고 미래에 대한 꿈이 보이면 가열차게 걷기도 한다.

해피해피한 인생이 어디 있겠나. 아무리 뒤져봐도 그런 인생은 없다. 해피해피한 인생은 무료한 인생일 뿐.
작품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인간은 대부분 출생의 비밀, 환난과 고통, 지속되는 도전, 고칠 수 없는 신경증과 정신적 장애를 가졌다. 그건 작품의 주인공뿐 아니라, 지금 저 밖 공원에서 떠드는 아이들과 어디선가 곤히 자고 있는 평화로운 사람들 모두에게도.

단 한 번도 쉬운 인생은 없었다.

4. 우리는 모두 아프다.
나도. 당신도.
아프지 않은 날도 있다.
아! 오늘은 아프지 않구나.
그래서 하루를 넘기도 또 살아있다. 반복될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 오늘은 아프지 않을거야. 라고 때론 거짓말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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