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를 잊는 파도

평생을 복수와 증오심으로 살던 사람이 있었다.
그 증오는 그 사람이 살아가는 힘이 되었다.
그렇게 30여년을 보내고 난 뒤 나는 그에게 더 이상 말할 수 없었다. 이제 그만 원망하고 이제 그만 증오하라고 할 수 없었다. 그 사람에게 복수하겠다는 일념은 그 사람의 삶을 지탱해 온 핏줄이었다. 그 사람이 복수심을 멈추는 날은 그의 생명도 끝날 것이 자명했다. 그 사람의 뇌가 멈추든, 심장이 멈추든, 둘 중 하나는 분명히 멈출 것이었다.

사람이 복수심을 갖게 되는 것이 이다지도 사소한 일이라는 걸 깨닫는 며칠을 보냈다.
야구방망이를 차 트렁크에 싣고 다녔다는 어느 잘생긴 가수의 이야기도 떠올렸다. 갑자기 그 모든 분노의 에너지가 다시 다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런 날이 있었다.
스타벅스에서 카푸치노를 시켰는데 바리스타가 내 주문을 잊었다. 나는 한 참을 기다려 너무도 힘겹게 그에게 내 커피를 달라고 말했고 커피를 받아 매장 밖으로 나오면서 울었다. 지하철역에서는 공원을 지나는 두 여고생에게 아무 이유없이 칼을 휘두른 남자의 끔찍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카푸치노를 손에 들고 눈물을 감추던 나는 조용히 뇌까렸다. “이해해. 왜 그랬는지 나는 알아.” 코를 풀면서 말이다.

정신줄을 놓아버리는 일은 별로 어렵지 않다. 거기까지 가게 되는 과정 중에 단 한 사람만 있어도 그렇게 되지 않는다.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책임지는 일은 우주를 떠안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너무 쉽게, 그 말들을 한다. 책임지겠다. 라고.

나는 진심으로 신의를 다했다고 주장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왜곡된 내 결함의 반영이었을지도 모르는데 상대방이 쥐똥만큼 악의를 가지고 내 선의를 이용해 먹었다는 걸 알게 된 먼 훗날, 그 누구도 보름달이 뜬 밤에 부싯돌을 꺼내놓고 칼을 갈 수 있다.
파도소리만 가득하던 깜깜한 어느 바닷가가 매섭게 그립다.
부싯돌을 꺼내놓고 칼을 갈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매일 밤 아름다운 파도가 치면 좋겠다.

2014. 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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