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야기 12. – 미정이

열 손가락 가득
색색의 메니큐어를 바르고
칠판 앞에 서서
교장에게 이르지 말라던
여선생이 있었다

추천도서 목록을 파란종이에 적어
내 주머니에 넣어주고
작은 피크닉 옷장 하나 있는
자취방 구경도 시켜주던
입이 크던 서울대 출신 여선생

어느 날 나를 불러 바들바들 떨면서
자퇴를 해버린 내 짝이던 미정이
얘기를 했다
글쎄 걔가 동자승이 씌인 무당이었댄다
지금은 점집에 가 있대
나는 미정이가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무서워서 잠을 못 잔다는 나보다
열 세살은 많은 그 여선생을
꼭 안아주고 싶었지만
가지고 다니던 십자가 하나 주고 싶었지만
연락오면 전해드리겠다 대답만 하고
쪽문 달린 자취방을 나왔다

미정이네 집은 비어 있었고
아무도 미정이를 찾지 않았다
어른들은 미정이를 무서워했고
아이들은 미정이를 천박하다 했다

미정이는 가난한 집
돌봐줄 이 없는 가난한 내 짝
밥차려 주는 사람 하나 없어 소주만 마시던
눈이 길고 가늘던 내 짝
담배 한 대 피우면
내 삶의 과거가 모두 보인다던 미정이는
열 다섯 나에게 뭐라 뭐라 했었는데
지금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으니

전 학교의 교무실을 털다 쫒겨나 전학온
나보다 한 살 많던 미정이는
이제 마흔 한 살이 되었을텐데
요즘도 담배 한 대 피우면
내 과거가 보일런지
만날 수 있다면 술 한 잔 따라주고
이제 내 미래도 말해주면 안될런지

2014.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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