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택시의 기억

늘 다니던 길이었다.
택시가 빙 돌아 먼 길로 우회하는 걸 모를 리 없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다니는 길이고 이미 한 달 반이 되어가던 길이다.

나는 흰색 면 블라우스를 입고 멜방이 달린 길다란 검정 치마를 입고 있었다. 화장은 하지 않았지만 머리는 적당히 길었고 콘택트렌즈도 끼고 있었다.

나에겐 500원도, 1000원도 매우 귀중한 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택시를 탔느냐 하면, 지하철 역에서 그 곳까지는 버스 노선이 없었기 때문이다. 혐오시설. 분명 서울시내에 있었으나 그 곳으로 가는 버스는 없었다. 그 곳의 주변까지 가는 버스는 있었으나 나에게는 500원만큼 시간도 중요했다. 시급 1000원짜리 아르바이트에 늦어선 안되기 때문이다.

구치소앞에서 택시를 탔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붉어진 얼굴에 질질 짜고 나온 눈물 때문에 이 자가 나를 우습게 본 게 틀림없었다.

지하철역에 다다르자 뒷좌석에 앉았던 나는 기사에게 말했다.
길을 돌아오셨다고.
원래 여기까지 2800원이면 충분하다고. 지금 4000원이 넘게 나왔다고.

기사는 룸미러로 나를 슬쩍 보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원래 내는 요금대로만 드리겠다고 했다.
“그래?”
택시 정차장에 닿은 기사가 속도를 올렸다.
“내가 못 내려주겠다면?”

택시는 서지 않고 속도를 내어 다시 어디론가 달려갈 기세였다. 지하철역 근처 승강장은 반원형으로 되어 있어 돌아나가게 되었다. 나는 당황하지 않은 목소리로 긴 한숨과 함께

알겠어요. 다 드릴테니 그냥 세워주세요. 라고 말했다.

기사는 반대편 승강장에 차를 세웠다. 나는 천원짜리 네 장을 던지듯 내었다. 그 새 요금이 100원 올라 있었다. 나는 동전 몇 개를 더 꺼내 기사에게 쥐어주고 차 문을 세게 닫았다.

택시를 탈 때마다는 아니다. 가끔 아무 일도 없을 때 이 생각이 난다. 그 날 내가 택시에서 내리지 못했다면, 어떤 삶을 살게 되었을까.
등골이 서늘해질 때가 있다.

그 때 나는 열일곱살이었다.

2014.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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