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자의 몫

1. 너 걔랑 놀지 마.

– 나보다 어린 사람에게 쉽게 하는 말.
너는 대체 왜 걔랑 노니? 딴 애랑 놀아!
동생이나, 자식들에게 쉽게 하던 말이다.

오늘 어떤 사진을 보고 있자니 아 그래도 얘한테는 걔가 유일하게 같이 노는 친구구나.. 다른 애가 아무도 없구나..

걔랑 놀지 말라고 하던 내가 해야 할 일은 친구가 되어주거나, 다른 친구를 소개해주는 일이었겠지, 걔랑 놀지 말라고 할 일은 아니었다.

2. 유기를 수차례 당하고 결국 내 손에 들어온 늙은 시츄가 한 마리 있었다.
목줄을 걸고 산책을 나갈라 치면 당췌 움직이질 않았다.
몇 번을 거듭한 끝에 산책을 나서긴 했지만 20분 정도 걷고 나면 바닥에 배를 깔고 앉아 일어나질 않았다. 잡아 끌고 궁둥이도 쳐봤으나 영 요지부동. 나는 그 아이를 안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 때 나는 “이 시키 뺑끼쓰고 지랄” 이라고 쉽게 말했다. 개가, 게으르다고 비난했다.
그 개는 몇 년 지나지 않아 노환으로 죽었다.

며칠 전 아지와 한 시간 정도 산책하는데 아지가 힘들어 보였다.
그 때 그 게으른 시츄는 게으른게 아니라 다리가 아파서 못 걸었을 수도 있다는 걸, 수년이 지난 며칠 전에 깨달았다. 사실이거나 아니거나.

3. 말할 수 없는 존재는 우리와 언어가 다른 개나 동물들이 아니다. 발화언어의 형식이 달라서 내가 이해하지 못하거나 감정과 이유를 표현할 수 없는 것은 단지 그 표현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듣는 사람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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