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사건일지

노후한 배가 있었다. 
정부정책이 바뀌어 사용기한을 늘려주었다. 
불법 증축과 개조를 했다. 
화물을 3배나 더 실었다. 
그 화물을 결박하지도 않았다. 
안개가 많이 낀 날이었다. 
그러나 출항했다. 
수학여행을 가는 아이들이 탑승했다. 
탑승자 정보가 정확하지 않았다. 

배가 기울어지면서 침몰했다.
선장와 선원들이 먼저 탈출했다.
구명정이 펴지지 않았다.
배가 급속도로 기울었다.
안내 방송은 없었다.
해경은 40분이 지나 도착했다.
신고한 아이에게 GPS 위치를 물었다. 아이는 GPS를 몰랐다. 

해경의 구명정은 선장과 선원을 구출하고 더 구조작업을 하지 않았다.
아이들을 구한 것은 민간인과 어업지도선이었다.
중대본부가 꾸려지지 않았다.
기자들이 몰려왔다.
친구가 죽은 걸 알고 있냐고 살아남은 아이에게 물었다.
안행부 장관이 와서 참모들과 치킨을 시켜먹었다.
밤이 되었다.
구출된 선장과 선원들은 해경의 개인소유 아파트에서 첫 날밤을 보냈다.

민간잠수사들이 몰려 왔으나 지휘체계가 잡히지 않아 내려갈 수 없었다.
선주와 해경이 계약한 업체가 독점업무를 수행하게 되어 있었다.
민간잠수사들은 “독점계약”에 가로 막혀 수중진입에 실패한다.
업체와 자원봉사, 그 사이의 해경은 타협하지 못한다.
한 쪽은 사람의 목숨을 우선시 하는데 한 쪽은 실적과 계약, 윗선의 눈치를 중시하니 타협점은 없다.
교육부 장관이 내려와서 사발면을 먹었다.
총리가 내려와서 물병을 맞았다.
대통령이 내려왔다. 어떤 부모들이 무릎꿇고 빌었다. 책임자는 엄벌에 처하겠다고 천명하고 돌아갔다.
해경 대변인이 발표를 하던 중에 예비역 중령이 나타나 왜 입수를 방해했느냐고 따진다.
구조가 지지부진하자 부모들이 행진을 시작한다.
경찰 수백명이 나타나 잽싸게 가로막는다.

분향소가 차려진다.
정부주도 분향소의 이전 사실을 죽은 아이들의 단체카톡방에 통지한다.
대통령이 조문을 했다.
신원미상의 조문객이 대통령의 등뒤에서 접근했으나 안전사고는 없었다.

알바생의 장례비는 지원할 수 없다는 발표가 있었다.
구조작업중이던 잠수사의 바지선에 해경선박이 충돌했다.

한 번도 실종된 적 없이 갇혀 있던 아이들이 시신이 되어 4km 밖에서 발견되었다.
사고가 난 지, 17일이 지났다.

– 가만히 있으라, 기다리라고 말했다.
사고 발생 17일째 되는 날, 지하철이 부딪히는 사고가 있었다. 승객들은 안내방송을 기다리지 않고 침착하게 빠져나와 스스로를 구했다.
이제 그 어떤 재난이 닥쳐도 그 누구도 안내방송을 믿지 않을 터이다.
내가 살고자 한다면 가만히 있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 이게 국가를 바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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