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구경

1.

나는 사람을 믿지 않지. 라고 쉽게 말하곤 했다.
그게 아마 작년까지였는지, 올 여름까지였는지 모르겠다.

사람은 예측할 수 없지. 라고 지금은 바꿔 말할 수 있다.
영 능력이 안되는 것 같던 사람이 갑자기 뒷심을 크게 발휘하는 경우도 있고, 매우 잘 해낼거라 기대했던 사람이 바닥을 기는 경우도 본다.

사람들의 진정성, 순수성, 자율성, 자치적 능력들을 전혀 믿지 않으며 살아왔다. 나 역시 그렇게 살았을 것이다. 내가 생각한 인간의 조건 중의 하나는 “절실함”이었다. 절실하지 않으면 아무도 치열하게 살지 않는다는 것 때문이었다. 누군가 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잘 하지 않는다는 건 절실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판단한다.

한 해를 보내며 다시 점검하는 것들 중에 사람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한 사람이 역량을 발휘하는 문제에 대해서, 한 집단이 힘을 모아내는 일에 대해서 생각한다.

모든 인간은 어느 정도 게으르고, 안주하길 원하며, 안전하길 기원한다는 건, 생존의 법칙 때문일 것이다. 변화는 모든 동물에게 두려운 일이고, 스트레스고, 도전이다.
“나는 쉴 새 없이 변하는 게 좋아.” 라는 건 그 바닥에 터져 나오지 않은 다른 이야기가 분명히 있다. 그 어떤 것에도 만족하지 못하거나, 집중하지 못한다는 건, 달리 말하면 끝없이 탐색하고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사람은 구석에 몰리고, 위기에 봉착하면 힘을 발휘한다. 안전한 상태에서 굳이 치열하게 살아나가야 할 필요가 무엇일까. 위기라는 건 생계나 생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인간의 정서, 자존감, 스스로 지켜야 할 마지막 존엄에도 위기는 찾아오곤 한다.

“에이 썅 내가 본때를 한 번 보여주겠어! ”
이게 바로 자존감의 위기를 맞이할 때 하는 말들일게다.

2.

올 해도 참 다양한 사람을 만났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움직이는 모든 역동의 이유를 들여다 보기도 했고 혼자 추측해보기도 했다. 나날이 사람에 대한 이해도는 높아지는 듯 한데, 이런 건 참 위험한 일이라, 섣불리 나대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으나, 나도 모르게 행동으로 표정으로 발휘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해마다 일기장을 새로 열며
“삶은 치열해야 한다” 라고 적었다. 그렇게 적은 게 20여년이 되었다.

어제는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힘들게 살지 말자.
지나치게 치열하게 굴지도 말자.
힘을 차곡차곡 쌓아야 오랫동안 버틸 수 있다.
변함없이 버티는 일,
그게 가장 중요한 일이다” 라고.

정말 매년 다짐처럼 치열하게 살았던가,
아마도 그랬던 것 같다.
이삼십대는 그렇게 살면서 바닥을 굴러보는 게 나았을 게다.

인간의 숭고함을 철석같이 믿고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시각을 만나면 당황스럽다. 그럴 때는 쓰레기장에서 재활용을 줍다가 밖으로 나온 기분이 든다.
얼마 전 만났던 YMCA 꿈프로젝트 친구들에게 마무리로 그런 얘기를 했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인간은, 그 어떤 동물보다 더 한없이 악랄하고 저열하고 폭력적일 수 있으나, 또 그 똑같은 인간이 이루어 낼 수 있는 숭고함은 신과 닿을 수도 있는 것 같다고.

3.

딸아이가 낮에 절친이라 하기 어려운, 아는 아이의 이야기를 전했다.
실종된 지 3주가 됬다는데 소식도 없고 가족들도 적극적으로 찾고 있지 않는 것 같다 했다. 그 아이는 남자아이인데 두루두루 아이들과 친하지만 딱히 친한 친구는 없으며 가정환경도 복잡한 것 같다 했다.
나는 심드렁하게 “배타러 갔을 지도 모르지” 라고 대답했다.
“에?? 새우잡이?” 라고 대답하는 아이한테
“뭐 세상만사 귀찮고 정붙일 사람도 없고 배타고 돈 벌고 그런 생각 했을 지도 모르는 거 아냐. 죽었을 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좀 그렇잖아.”

아이는 다른 이야기들을 연이어 꺼내놓았는데 우리는 결국 “개천에서 용난다” 이야기까지 발전했다.
딸아이는 “되게 열심히 살고 훌륭한 아이들이 있는데 식구들 때매 신세 망치는 것 같은 애들이 꼭 있어. 걔들은 그런 가족이 없으면 더 잘 될 수 있을 거 같은데.” 라고 하길래
“그런 가족이 있어서 열심히, 치열하게 살고, 훌륭해 지는 지도 모르지.” 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날 봐라. 내가 안정적이고 아름답고 막 존나 우아하고 선량한 집구석에서 사랑 듬뿍 받으며 자랐으면, 엄마가 지금 이만큼 왔겠냐?”
아이는 피식 웃었다.

4.

원인을 찾는다는 게, 찾다 보니 원망이 쌓이고 그게 분노가 되고 되려 홧병이 되어 덮쳐 오기도 했다. 원인을 찾았으면 해결방법을 찾으러 가야 했는데 원인을 찾고 나니 해결방법을 찾기 전에 너무 쇼킹해서 눈은 멀어버리고 정신을 잃었다고나 할까.

그래서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이고, 아는 게 병이라고 했던가.
몰랐던 건 약으로 때우면 되지만 알게 되면 개복을 해야 된다는 얘기인가..
(잘도 갖다 붙이고 있다)

5.

암튼 그랬다.
오늘도, 어제도 나는 매일 매일 사람구경을 한다.
한 사람의 표정과, 그 사람의 마음과, 그 안에 도사리고 있는 두려움과 슬픔에 대해서. 어두운 방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왜 엄마가 안 오지. 하고 혼자 별의 별 상상을 다 지어내어 훌쩍이고 있던 세상 모든 늙어버린 아이들에 대하여.

오늘도 내가 젖은 머리를 말리고 얼굴에 치덕치덕하게 끈적한 크림을 바르는 동안 “엄마 안아줘.”를 반복해서 옹알거리다 잠든, 서캐낀 대구빡의 내 새끼에 대하여도.

+ 요즘들어 자꾸 의심되는 것은 내가 살아온 세월동안 내가 믿어온 가치관, 옳다, 아니다. 라고 판단했던 그 당시의 생각들이, 정말 옳은 것인가. 하는 거다. 아주 어렸을 때도 “이건 아니지” 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지금 생각해도 “이건 아니지”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이긴 한데 그게 과연 모두 다 객관적으로 검증해봐도 그렇게 볼 만한 사안인가. 하는 것들이다. 흠.

+ 그래서 내가 간혹 탈북. 이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가치관의 전복, 살아온 모든 삶에 대한 부정. 그게 가져오는 충격은 과연 어떤 것일까.

 

2013. 1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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