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적인 시대

노래와 이야기가 어우러지는 형태의 콘서트가 유행이라던데 공연장에까지 앉아서 남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아 단 한 번도 가 본적이 없다. 그 누구보다 언어를 많이 사용하며 살고 있지만, 때로는 그 모든 언어들이 다 부질없어서 굳이 말로 이루어지 않은 것을 찾고 싶을 때가 있다. 목소리로 말을 하지 않고 알아들을 문장을 전달하지 않고 이렇게도 저렇게도 들을 수 있고, 내가 아는 만큼 내가 듣고 싶은 만큼만 들어도 되는 그런 형태의 소리로 많은 것을 함축 시키고 싶을 때가 있다.
어릴 때부터 라디오를 들어도 말이 많은 것은 일부러 피했는데 그 반면 나는 이야기를 잘 하는 아이였다.
내 얘기만 들어달라고 하는 거였는지 아직 잘 알 수 없다.

오늘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는 박제동 화백을 모신 토크콘서트 형태의 국악콘서트가 있었다.
80분 공연에 음악 공연은 30-40분 정도로 할애하고 나머지는 정은아의 사회로 이루어졌다.
박제동 화백은 입담이 좋은 사람이었다. 객석에서 간간히 폭소가 터졌고 나 역시 프로그램북으로 입을 가리며 웃곤 했다. 그의 화법은 숨김이 없고 솔직하고 정직했다. 샘이 나고 화가 나고 오기가 나고 질투가 나는 인간의 칠정을 모두 무대에서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관객들이 웃는 부분은 바로 거기였다. 길들어지지 않는 인간의 건강하고 솔직한 감정을 표현할 때 말이다.

행복했어요. 오기가 났지, 화가 나서, 미치겠는거야. 어쩔 줄을 모르겠지, 부끄럽죠. 대체 어떻게 이런 짓거리를 했을까, 막 질투가 나지요. 아 나는 어떻게 하지, 나보다 더 잘 하는 사람을 보면 참을 수가 없어요. 질투가 나서 미치겠는거지. 그래서 어디 너 두고보자 하고 오기를 부렸어요.

오늘 그 공연장에서 박화백이 말한 자신의 감정들이다. 인간의 오욕 칠정을 숨김없이, 그렇지만 뻔뻔하지 않게, 솔직하지만 염치있게 말하는 것이 듣기에 즐겁다는 것을 알게 했다.

말과 음악이 같이 공연된다는 것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느낄지 모르겠으나 나로서는 생소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사람들은 더 이상 구체적이지 않은 것을 고스란히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어려워하게 된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의 중요성에 대해서 인지하는 시대다. 개나 소나 스토리텔링- 이라는 비아냥조도 떠돈다. 나 역시 이야기를 발굴하고 쌓아가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를 관통해 온 이야기들은 구체적이거나 노골적이라기 보다 상징적이며 여러가지 해석을 가능케 하는 가사없는 노래같은 특성이 있다.
소리를 더한 극을 하고, 그 극을 해설하고, 사람들은 점점 더 느끼는 것보다 알고 머릿속에 집어넣기를 원하는 지도 모르겠다.

유홍준의 “아는 만큼 보인다”가 그 출발점이었을 거다. 알지 못해도 볼 수 있는 것이 인간의 “눈썰미” 라는 것인데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추상적인 것을 아름답게 느끼지 못할 만큼- 바쁘다.

그리하여 시대는 추상과 이별하고, 극사실과 해석, 해부와 분석에 익숙해지는 것은 아닐까.
박제동 화백의 그림으로 부족하고 그가 덧붙인 글씨를 읽는 것도 부족하여 그 그림을 그리게 된 이유를 구체적으로 듣고 거기에 걸맞는 음악을 연주해 특정한 느낌을 잡아넣고 그 음악에는 구체적 대사와 이야기까지 넣어 확장까지 시키는 시대.

좋다 나쁘다로 평가하고 싶지 않다.
그저 시대는 모든 예술이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의 입맛에 맞춰지고 있다는 것 뿐이다.

2013. 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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