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미워하는 자 고마워요

사람이 없다는 게 얼마나 슬픈 일인지 이제 깨닫는다.
사람이 없을 때는 그 허기조차 느끼지 못했던 것도 깨닫는다.
내 주변에 모두 좋은 사람들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참 인복이 많다고 생각했던 이유다.

내 주변엔 인품이 훌륭한 사람도 많고 독한 사람도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 적 있다.
물론 그보다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세상은 나한테 쌀 한 톨 보태주지 않는다며 악에 받쳐 두 주먹을 꾹 쥐고 어금니를 꽉 깨물고 휘청휘청 걸어가던 어린 시절도 있었다.
그 휘청대는 걸음으로 한참을 지난 뒤, 그래도 누군가 술 한 잔 따라주었고, 그래도 누군가 라면이라도 사주었다는 걸 뒤늦게 기억했다.

“세상에 참 좋은 사람이 많아, 내 주변은 다 그래, 그게 내가 만든 세상이거든, 내가 만드는 세상의 중심은 어찌됬건 나니까.” 라고 생각했던 건 얼마 전까지다. 이건, 드라마 에서 경이가 복수에게 “복수씨의 인생을 바꾸는 건 세상을 바꾸는 거예요” 라고 말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그런데 –
얼마 전부터, 사람이 사람답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물론 사람이 필요하고 사람들 속에서 자라야 하는 게 맞지만, 그 사람들이 모두 좋은 사람이어서는 안된다는 걸 깨달았다.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는 사람, 나를 윽박지르는 사람, 내 바닥을 보게 하는 구타유발자, 끝없이 나와 불화하고 나와 적이 되는 사람, 언제나 나에게 딴지를 걸고 시비를 거는 사람도, 사람이 온전한 인품을 갖기 위해서 꼭 필요한 사람들이라는 거다.

내 입맛에 맞는 사람들로 가득 채운 나만의 제국에서, 인간은 얼마나 오만방자 하기 쉬운가.

세상에서 나를 괴롭히는 그 누군가로 인해 인간은 성숙한다. 내 편보다 남의 편이 많아야 반성할 기회가 많아진다. 내 편으로 가득한 세상에선 바닥을 볼 일도, 성장을 할 필요도, 반성을 할 이유도, 사과를 하거나, 손해를 보거나, 베풀 이유도 없다.

어떤 엄마는 자기남편을 남편이라 부르지 않고 “내편”이라 부른다 했다. 그러나 오늘같은 날은. 남편처럼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은 그저 남편인 게 좋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게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 늘 남의 편인 사람이 가족중에 있을 때, 그런 성장기를 거친 사람이 더 많은 자를 이해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도 있겠다. 물론 누군가 나를 적대시 하는 것이 대해서 쉽게 배척하고 미워하기를 즐긴다면 콩알만큼의 깨우침도 없을 것이지만.

니체가 그랬다던가.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이, 나를 가장 강하게 만든다고. 뭐 그런 맥락.

2013. 6. 19.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

%d 블로거가 이것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