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전목마

1.

사람은 근본적으로 보수성을 띄게 되어 있고 궁극적으로 회귀하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흔히 인사불성 상태로 술을 마시고도 집으로 찾아 들어가는 걸 귀소본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다음 정거장에서 내릴 예정이면 정신 못차리고 자다가도 희한하게 눈이 떠지기도 한다.

말하자면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시공간을 찾아간다는 얘기로 들린다.

2.

폭력가정에서 자란 아이가 폭력의 가해자가 되거나 피해자가 되기 마련이라는 얘기가 있다. 여태까지 대부분의 연구는 학습된 무기력으로 피해자가 되고, 학습된 분노의 방식으로 가해자가 된다고 한다.

폭력의 기억은 가장 큰 트라우마일 것이다. 그게 누구로부터 받은 것이든, 본인이 가한 것이든, 어떤 경로로 어떻게 발휘되었는가의 여부를 떠나, 가장 아픈 기억이 될 것이고, 그로 인해 자기 인생에 가장 큰 구멍이 생겼다고 여길 것이다.

3.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 개인이 자기 인생에 가장 큰 구멍이 된 부분을 복구하고 싶은 본능은 없을까

혹은,
그 환경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무리 어떤 폭력이 가해지더라도 단지 “익숙하기 때문에” 고향처럼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

예를 들면, 매맞은 어머니 아래서 자란 딸이 다시 그 인생 유전을 겪는 경우 말이다. 버려진 유년기를 보낸 장년의 가장이 다시 스스로 버림받기를 선택하는 경우 말이다.

학습된 무기력, 혹은 학습된 폭력의가해 외에도, 딱히 어떤 폭력의 기억이 없더라도 자기 과거의 어떤 특정한 부분으로 회귀하려는 무의식의 작용은 없을까 하는 것이다.

어찌저찌해서 돌고 돌아 다른 삶을 산다고 고단하고 지리하게 노력했는데 결국은 원점인 느낌 말이다.

4.

오래전에 장서희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회전목마 라는 MBC 주말드라마가 있었다. 그 제목의 뜻은 돌고 돌아도 결국 원점이라는 것이었다. 두 자매가 지지리도 고생을 하며 성장하는 내용이었는데 삶의 불행은 언제나 원점이었다.

그게 딱히 불행이라 하기도 어렵고 행복이라도 하기도 어렵더라도, 인생 전반에 걸친 하나의 주제가 있을 것이고 언제나 그렇게 비슷하게 지내온 한가지의 중심되는 분위기가 있었다면, 자기에게 어울리지 않은 옷 같은, 남들에게 평범한 행복이라든가, 남들에게 일반적인 일상 같은 게 너무 거추장스럽고 불편하게 느껴져서, 남들이 보기엔 “행복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처럼” 그 낯선 행복을 아무 생각없이 벗어버리는 일 말이다.

5.

그래서 결국은 외로움이라든가, 방치라든가.. 그런 것들이 나에게 어울리는 옷이라고 생각해서 다시 회전목마를 타고 원점으로 돌아간 것 같이 돌고 또 돌아 다시 외로운 상태로, 방치된 상태로 돌아가게 되는 것은 아닌가 말이다.

구태여 예를 들자면,
나에게 가장 편한 밥반찬인, 굽지 않고 숟가락으로 떠먹는 스팸에 계란후라이 하나. 뭐 그런 것처럼 말이다.

2013.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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