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름

130411_sunset

 

해 지는 시간이 늦어진다.

하루가 추웠다. 나만 추웠겠는가. 그도 추웠을 것이고, 당신도 추웠을 것이고, 우리 모두, 조금씩 시린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따듯한 것이 생각나서 나는 설렁탕을 사러 간다. 검은 나의 차를 타고 어스름이 내리는 거리에, 네온사인이 들어오는 광경을 본다. 가족들과 밥을 먹으러 나온 사람들이 식당에 삼삼오오 앉아 있기도 하고 야근을 하기 전 허기를 달래려는 남자들이 신발을 반쯤 벗은 채 앉아 설렁탕을 훌훌 먹고 있다.

외롭다고 말을 하면 그 뒷모습이 초라해보일까봐

쓸쓸하다고 말을 하면 내 신발의 뒷축을 감추고 싶을까봐

아프다고 말을 하면 앞선 자의 눈이 아련해 질까봐

오늘도 가면을 쓰고 하루를 지내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 긴 한 숨을 쉰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가.

그 모든 대답은 나에게 있는데 애써 들여다 보는 시간이 엄습해오는 걸 느끼는 바로 그 때가 어스름.

침대맡에 앉아 일기를 쓰는 그 한적한 시간에 물밀듯이 밀려드는 안타까움에 대하여.

그럴 나이와 그럴 때가 따로 있다는 말 따위는 들리지 않는다는 듯이 밀어내면서

최백호의 신보를 뒤적거리는 밤들이 이어지더라도,

그래 내일은 또 무슨 할 일이 산적해 있다는 것이 다행인 시절.

벚꽃은 아직 피지 않았고 여름은 멀리에 있다.

 

뒤틀리는 무릎의 통증을 느끼며 삐딱하게 서서 창밖을 바라본다. 휴대폰을 꺼내 그 어스름을 담는 시간. 그저 내가 기억하기 위해, 내 눈보다 다른 것에 의존하는 시간. 그런 시간들이 촘촘히 이어져 하루가 가고 또 하루가 가고, 나이를 먹고 아이는 자란다.

2013.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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