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인에게 복지란 무엇인가

페이스북에서 예술인복지재단에 대한 소식을 접하고 쓰는 글.

내가 읽었던 글은 이거.

http://www.kawf.kr/notice/sub01View.do?selIdx=388

예술인 복지법에 대해서 몇 마디를 나누다가 조금 더 얘기를 간단히 하자면 내 생각은 그렇다.

예술가라는 존재 자체가 뭔가에 대해서 원론적인 생각은 피하고 싶지만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펼치는 예술의 장르가 바로 그의 언어다. 말하자면,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그림이 그의 언어이고, 음악을 하는 사람은 음악으로 말한다.

물론, 그 중에 보편적 언어, 즉 지금 내가 쓰는 글과 우리가 흔히 하는 말에도 익숙한 사람이 있지만, 보편적 언어 대신 다른 수단의 언어를 선택한 사람들이 주로 예술을 하게 된다. 그건 그의 언어가 보편적 인간의 언어의 범주를 넘어서거나, 보편적 언어가 그들에게 걸맞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글쟁이는 글은 참 잘 쓰는데 눌변도 그런 눌변이 없는, 말씨는 엉망인데 글씨는 참 수려한, 그런 사람도 있다. 또 어떤 사람은, 글도 대단히 훌륭하고 말도 대단히 훌륭한, 보편적 언어를 극대화 시켜서 언어의 예술을 구사하는 사람도 있다.

+보편적 언어 – 라는 용어를 이 글에서 만들어 사용하기로 한다.

보편적 언어의 범주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보편적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과의 소통에 애를 먹는다. 어떤 이들은 기획이나 서류를 작성하는데에도 매우 젬병이기도 하고 일종의 공포증을 가질 수도 있다. 대화가 반복해서 어긋나다보면 누구나 그렇기 마련이다.

예술인복지법이라는 게 제정되고 그 혜택을 받기 위해선 행정적인 절차가 당연히 뒤따를 수밖에 없다. 쉽게 말해 누가 예술인인지 구별한다는 거 자체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예술인이라는 걸 과연 무엇으로 구별할 수 있을까. 이 나라에서는 데뷔라는 것을 해야 할 것이고 자신이 이루어낸 어떤 성과물을 제출해야 할 것이다.

전시회 경력, 공연 경력,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지, 발표 매체가 어디인지 등등의 경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게 아니고 학교를 졸업해서 당장 뭔가 시작하려고 하는 아직 성과가 없는 사람들은 이런 혜택을 받기도 어려울 것이다.

어떤 부분을 보면 예술인들의 일자리를 창출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각 지자체에서도 일자리창출 사업이라고 해서 여러가지 새로운 직업군을 “창조” 해 내고 있는데 이미 기존에 많은 비판이 있어왔듯 이것은 새로운 “비정규직 창출”에 지나지 않는다.

명확히 할 것은 예술가, 즉 작가와 기획자는 완전히 구별되어야 한다. 작가이면서 기획을 할 수 있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기획에 참여하게 되면 개인의 창작의 범주는 위협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작가가 작가로 살기 어려운 이유는 대부분 생계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아닐 수도 있다. 작가가 작가로 살기 어려운 부분은 작품을 만들어 내고 펼칠 무대가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작가는 빵도 먹어야 하지만 빵만큼 중요한 것이 개인의 작업이다. 개인의 작업을 자유롭게 할 수 있으려면 장소가 필요하고 그 장소를 사용할 비용이 필요하고 작업을 할 재료가 필요하고 그래서 생활고에 시달린다. 만약 한 작가가 작가가 아닌 사회인으로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또 다른 비용과 시간이 할애되기 마련이다. 작가에겐 비예술인보다 조금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한 법이다.

예술인 복지법과 예술인 복지재단과 같은, 예술인들에게 어떤 혜택을 주고자 하는 시도가 중요한 것을 간과하지 않았으면 한다.

지역에 놀고 있는 장소를 그들에게 사용하게 해주고 더 많은 전시와 공연을 하게 해주고 그 꿈과 능력을 펼칠 수 있도록 지금 갖추어 놓은 시설과 인력을 충분히 분배하기만 해도 큰 예산과 대단한 법제정이 필요없이 지금보다 조금 더 나아질 수 있다.

대관료를 내야 하는 상업갤러리, 갤러리와 작가는 5:5, 운반비는 개인부담, 초대전인 경우 작품이 안 팔리면 작품 하나 기증하셔야 돼요. 뭐 이런 시스템. 공연장도 대관해야 하고 리플렛도 자기가 만들어야 하는 사람들, 어디에 소속되지 않으면 개인레슨이라도 하든가, 학원 강사를 뛰든가 생활고와 작품 생산 비용을 해결해야 하는 사람들, 홀대받고 천대받아도 내 작품을 세울 장소만 있다면 한 번쯤 손해봐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젊은 작가들, 그들에게 사회가 요구하는 건, 많은 서류와 재능기부 정도가 아닌가.

행정적 절차를 완전히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창작에 필요한 시간을 할애해서 새로운 직업에 뛰어들으라고 할 게 아니고, 그들이 더 많이 작업을 할 수 있고, 그들이 더 많이 발표할 수 있는 장을 열어주는 것이 예술인의 복지를 보장하는 길이 아닐까 한다.

비어있는 공공시설에 전시와 공연을 하게 하고, 비어있는 공공시설에 작업실을 허한다면. 그것만으로도 한 걸음 멀리 나아가리라고 생각한다.

자꾸 새로운 뭔가를 배워서 새로운 직군으로 진출하라고 하지 말고, 예술인들에게 당신들이 하는 것을 조금 버리고 사회로 나오라고 제도 안으로 들어오라고 강요하지 말고, 자꾸 새로운 것을 만들라고 하지 말고, 있는 것을 활용하는 것은, 개인의 가계부 뿐만 아니라 전 사회에 걸쳐서 발휘되어야 할 기본 덕목이다.

아무리 창조경제를 한다고 해도 있는 거 홀대하고 새롭게 만들어 봤자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꼴이다.

 

2013. 4. 10.

다 쓰고 나니 북받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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