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는 왜 좋고 지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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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날이 있었어. 아기 기저귀에 쓰는 노란고무줄이 있었어. 그걸로 가속페달을 묶어놓은 버스를 상상해봤어? 내가 학교 다닐 때 타고 다니던 마을버스는 그런 버스였어. 그 버스가 기울어질 정도로 아이들이 많이 탔어. 그 버스를 타고 학교를 가던 길에 시비가 붙으면 버스기사 아저씨가 창문을 열고 욕을 했어.

“씨발 내가 너 따위 죽이고 깜빵 한 번 더 가면 돼”

똑같은 교복을 입고 깔깔대던 열일곱 열여덟 아이들이 순식간에 얼어붙는 순간이었지. 그 아이들은 그런 아이들이었어. 순수했고 착했어. 순조롭게 살아갈 수 있는 아이들이었고, 청천벽력같은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을, 안정된 성품의 부모밑에서 자란 아이들이 다수였어. 모험심이 많거나, 책임감이 적은, 바람같은 사람들과 가족을 이루고 사는 것보다 그 반대편이 사는 데는 훨씬 수월했겠지. 몰아치는 폭풍을 헤치고 나갈 에너지를 잘 모아두었다가 자기를 가꾸는 데 쓸 수 있거든.

바다에 배가 가는데, 자꾸 폭풍이 몰아치면 무슨 기운으로 고기를 잡겠어. 근데, 날씨가 계속 좋으면.. 고기도 잡을 수 있고, 하늘도 볼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 할 수도 있거든. 폭풍만 만나면서 살면, 그런 여유는 없지. 하루 하루 버티고 견디는 게 목숨이 달린 일이니까.

그래서 가정 환경이 안정적이어야 공부를 잘한다고 말하기도 하는거야. 맨날 집에 뭐가 박살나는데 뭔 정신으로 책을 들여다보나. 그런 집구석에서 아이들은 하루하루 숨죽이며 버티는 거거든. 그 와중에 공부를 하는 애들은, 유별난 독종이라고들 하는데, 뭐 꼭 그게 독종이라 그러겠어? 그건 그냥 그 아이가 버티는 방법인데 사회에서 좀 좋아하는 방법을 고른 것 뿐이잖아. 책에다 코 박고 있으면 집중이 잘 되는 뇌를 가지고 태어났나보지. 그게 뭐 꼭 훌륭하다고 말하긴 어려운 거 아니겠냐고.

그렇게 폭풍이 쉴 새 없이 불던 날이 있었어. 이번엔 정말 큰 건이 터진거야. 그 때 내가 열일곱살이었는데. 와 정말 살다 살다 결국 이런 일도 터지는구나. 싶더라고. 욕이 절로 나와. 씨발 이게 뭐지. 내가 왜 이러고 살아야 되지? 내가 뭘 잘못 했는데? 난 하라는대로 다 하고 살았잖아. 내가 학교에서 하지 말라는 짓을 했냐, 집에서 하지 말라는 짓을 했냐. 열일곱의 나는. 술도 안 먹고 담배도 안 피고 지각도 안하고 공부도 열심히 했어. 게다가 교회도 열심히 다니고 성경을 세 번이나 읽었다고. 그 때 욥의 심정이 뭔가 생각했어. 와 정말 좆같겠구나. 씨발.

내 생일이 8월 말인데.

그 날 학교에 자퇴서를 쓰러 갔지. 담임선생님이 무슨 일인지 다 알기 때문에, 그리고 나는 학교에서 인정받는 아이였기 때문에. 선생님들이 내년에 만나자고 힘내라고 다 격려를 해줬어. 그리고 집에 오는 길에 그 마을버스를 탔어. 나는 사복을 입고 있었지. 나는 학교에 소속된 아이가 아니니까. 사복을 입고 싶었어. 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아니라고 완강하게 외치고 싶었던 거 같애. 내가 이만저만한 그지같은 일이 생겨서 학교에 못 다니게 됬다구요!! 라고 나를 보는 모든 사람들에게 고함을 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원망을 퍼붓고 싶어서. 내가 뭘 잘못했냐고! 난 아무것도 잘 못 한 게 없는데! 내가 왜 자퇴서를 써야 되냐고!!

그건 지금 생각해도 충분히 억울할 만한 일이거든.

그래 그 마을버스를 타고 오는데.. 버스 안에 아이들이 하나도 없는거야. 자리가 비었더라고. 애들은 다 학교에 있었거든. 게다가 내 생일인데 말야. 날씨가 겁나게 좋은거야. 진짜 허벌나게 좋더라고. 햇빛이 막 미치게 내려쬐고 말야. 8월 말, 내 생일 즈음엔 주로 태풍이 오지. 그게 참 이 엿같은 팔자를 반영한다고 생각하던 나이였는데. 와 .. 날씨는 왜 좋고 지랄. 약올려?

날씨 좋으면 놀러가고 싶잖아. 사람들의 표정도 좋잖아. 길에 웃는 사람들도 많잖아. 나는 미치겠는데 말야. 내 세상은 무너졌는데 햇빛이 짱짱해. 태양이 비웃는 거 같은거지.

그건 니 문제야. 나는 멀쩡하단다.

슬펐지. 그래서 그 날 어디 쪼그리고 앉아서 뭘 적었을 거야.

내 세상이 무너지는 날, 누군가는 빨래를 널고 세탁소에 옷을 맡긴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누군가가 태어나고 누군가가 죽기도 한다. 일을 하고 돈을 벌기 위해 사람들은 회사에 가고 시장에 가서 고등어를 사겠지. 수박을 사오는 누군가의 엄마도 있을 것이고 아이스크림을 베어먹으며 골목을 뛰어노는 아이들도 있다. 내 세상은 무너졌는데, 그건 내 세상만 무너진 일이었다. 세상은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간다. 비록 내가 사라진다 해도, 세상은 아무 일 없이 돌아갈 거다.

뭐 대충 그런 내용이었어..

비참하지. 나 없이도 조직이나, 세상이나, 내가 속했던 사회가 돌아간다는 게 진짜 짜증나잖아. 그게 얼마나 슬퍼. 나 없으면 죽을 거 같은 사람이 있어야 하잖아. 근데 그게 아니더라고. 인간은 그냥 그렇게 먼지같은 존재야. 근데 그걸 깨달았는데도, 그 때 한 생각은. 아 나는 정말 무용지물. 여기서 끝났거든.

근데..나는 무용지물이다 – 에서 모든 인간은 다 그렇지만 그래도, 무용지물은 아니다. 이런 고차원적인 생각으로 발전하는데.. 20년이 걸린 거 같애. 뭘 억지로 해서 티비에 나오는 인물이 되고 싶다는 그 경박한 욕심을 버리는데 말야. 왜 그렇게 오래 걸린 걸까. 한심한가? 근데 또 그것도 아니거든. 뭐가 한심해. 인간은 원래 다 한심해. 나만 그런 게 아니고. 다른 사람들도 다 그래. 더 한심한 인간도 다 잘 살아. 밥 잘 먹고 잘 자고 똥만 잘 싸고 잘 살아.

날씨를 뭐 어떻게 할꺼야.

날씨 좋다고 하늘에 돌 던지면 나빠지나.

아니면 돈이 많아서. 내 기분이 맞는 날씨를 찾아 비행기를 타고 가나? 갔는데 거기 날씨가 바뀌면? 그럼 말짱 꽝이잖아.

기분이 나빠. 날씨 좋아서 더 나빠. 날씨가 나빴으면 좋겠어. 비가 주룩주룩 왔으면 좋겠어. 그럼 뭐..기다려야지. 비 오는 날까지. 뭘 어떻게 하겠어. 그리고 오늘은 집에 가서 적는거야.

와..오늘은 정말 좆같은 날이었습니다. 씨발. 오늘을 최악의 개같은 날로 정하면, 내일은 덜 개같겠지요. 하하하. 잠이 오나. 잠이 안 오겠지. 안 오면 뭐 못 자는거지 뭘 어떻게 하나. 꼭 자야되나. 하루 안 잔다고 죽지 않아. 그냥 내일 좀 피곤할 뿐이야. 세상에 .. 그렇게 큰 일은 없어. 다 어떻게 보면 그냥 먼지같은 일이야. 할매들한테 어떻게 사셨나요? 물어봐봐. 그 새털같이 많은, 개털보다 많은 날들이 한 줄이 되거든. 그 해에는 애를 낳았지. 2년이 넘어가고 그 해에는 둘째를 낳았지. 아마 큰 애가 아팠던가.. 안 죽었으면 다 별 일 아닌거가 되는 거 같애. 사람은 그렇게 쉽게 죽지도 않잖아. 안 죽으면 됐지. 뭐. 살아있으면 언젠가 억울하다고 말이라도 할 수 있으니까. 혹시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살려두는 게 나을 거 같애. 언젠가 붙잡고 말해줘야지. 너 때매 뒈져버리는 줄 알았어. 알고는 있냐? 라고.

2013. 3. 15.

 

근데 그 때 그렇게 억울했는데 말야.

그 때 내가 꼭 그렇게 억울해하지 않을 수도 있는 방법이 있었다. 그게 뭔지 알아? 자퇴서를 안 쓰는거야. 버티고 학교에 다닐 수 있었거든. 근데 나는 내가 더 비참해지는 방법을 택한거지. 누가 알아줄까봐. 그냥 훈장 하나 달고 싶었던거야. 그래서 훈장을 달았지. 트라우마. 내 트라우마. 내가 골라서 내 가슴속에 새긴거야. 그냥 학교 버티고 다녔으면. 친구들이나 선생님들의 위로를 받으면서 혹시 알아. 학교에서 장학금을 줬을 수도 있어. 그 일은 생각보다 무척 금방 해결됬거든.

그렇다고 해서 그 때 왜 자퇴서를 썼나.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아. 그냥 내가 그런 인간이구나. 깨달은 걸로 만족이야. 어쨌거나 쉬는 동안 공부를 좀 해서 성적을 올리고 다음 해에 당당히 재입학을 했고 학교도 잘 다녔으니까. 그게 막 가슴아파할 일은 아닌거 같애. 내가 그냥.. 모르는 길이 있으면 일단 가봐야 직성이 풀리는. 지랄같은 성격때문이겠지 뭐. 내 트라우마, 내 상처ㅡ 그런 거 말야. 뭐든지, 일단 외부에서 어떤 자극이 왔을 때, 결국 어느 방의 문을 여는가는. 내가 선택하는 거더라고. 등 떠밀려 들어갔어도, 나올라면 나오는거지 뭐. 올드보이의 최민식이 아닌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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