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쓰다 – 설렁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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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하늘에서 그냥 떨어지지 않는다. 벌어야만 한다. 그게 어떤 방법이 되었건간에, 모든 사람들은 제 밥을 벌기 위해, 혹은 제 가족의 밥을 벌기 위해 살고 있다. 밥벌이라는 단어를 처음 쓴 것은 소설가 김훈 선생이 아닐까 싶다. 나는 그 단어에 매혹되어 그의 산문집 밥벌이의 지겨움을 사서 읽었고, 밥벌이에 대해서 한참을 생각했다.

어제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나는 이제 더 이상 밥벌이를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 선언했다. 그는 나에게 언제 네가 제대로 된 돈을 벌어본 적이 있느냐고 되물었다. 그렇다. 나는 치열하게 밥을 벌었을 뿐이지, 제대로 된 돈을 벌어 본 적이 없다. 일부는 떼서 저축을 하고, 미래를 계획하고, 혹은 자신을 위해 투자할 수 있는 그런 돈 말고, 나는 그 때 매일 매일 밥만 벌었다. 하루 먹고 살기 위해, 일주일을 버티기 위해, 또 한달 치 월세를 내기 위해, 나는 그 때 밥을 벌었다. 밥벌이가 지겨운 정도가 아니라 치가 떨리던 그 시절에, 나는 마음속이 헛헛해지면 마포에 가서 설렁탕을 먹었다. 10년도 훨씬 더 전에, 그 설렁탕 집엔 지긋한 나이의 노인이 계산대를 지키고 있었다.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해방 이후, 혹은 전후부터 그 자리에서 설렁탕을 끓여대지 않았을까 싶은 양반이었다. 10년이 훨씬 더 지나, 그 자리에 다시 가보니 그 집은 여전히 설렁탕 냄새를 골목 자욱히 풍기고 있었고, 계산대를 지키는 사람은 30/40대의 젊은 사내로 바뀌어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전과 다름없는 설렁탕 한 그릇을 내게 내어주었다.

설렁탕에 대한 미련은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에 기원한다. 중학교 때 나를 총애, 아니 편애 하시던 한 선생님이 나에게 중학교에 다닐 동안 읽어야 할 리스트라며 파란 메모지 몇 장을 건네 주셨다. 그 중에 한 편이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이었다. 나 역시 그 선생님을 편애하고 있었으므로, 나는 선생님의 조언에 따라 열심히 책들을 읽어나갔다. 그리고 삼중당문고의 후예뻘인 어느 출판사의 작은 문고판으로 현진건의 단편소설집을 읽었다. 운수 좋은 날엔 가난한 인력거꾼이 밥을 벌러 다닌다. 그의 아픈 아내는 그가 일을 나서기 전에 설렁탕 한 그릇을 먹고 싶다고 한다. 인력거꾼은 억세게 운이 좋은 일진을 맞아 손님을 태우고 경성거리를 미친듯이 달린다. 그리고 설렁탕 한 그릇을 사서 집으로 돌아갔을 때, 그의 지독히도 운 나쁜 여편네는 이미 이 세상을 버렸다. 나는 그 때 설렁탕. 이라는 음식에 모든 삶의 비애와 고통과 팔자를 담아 버렸다. 얼마 전 읽은 문태준의 느림보 마음이라는 산문집에는 릭샤 운전수에 대한 비애가 담긴 글이 한 편 읽었다. 나 자신이 그 릭샤에 앉아서 묻어 가는 것이 아니길 바란다는 시인의 착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나는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과, 김훈의 밥벌이의 지겨움과, 문태준의 느림보 마음을 모두 설렁탕 한 그릇에 응축 시키기로 했다.

 비오는 거리에서 인력거를 끈다고 생각해보자. 집에는 올망졸망한 아이들이 퀭한 눈을 하고 아비를 기다린다. 병들어 아픈 여편네는 설렁탕 한 그릇이 먹고 싶다고 한다. 인력거꾼은 오늘도 밥을 벌기 위해 비가 오는 줄도 모르고 사지 육신이 메말라 가는 줄도 모르고 미친 듯이 거리를 달린다. 뚱뚱한 귀부인이 인력거에 올라타 그 인력거가 휘청하더라도 별 수 없다. 귀부인은 팁까지 얹어서 돈을 내고 내렸다. 이제 남은 것은 설렁탕이다. 설렁탕을 몇 그릇을 사야 할 것인가. 돈 벌어오는 자가 가장 단 한 명뿐인 가족구조라면, 가장은 설렁탕을 보며 침을 꿀떡 삼키고 포장을 해가야 할 것이다. 가장은 그런 사람이니까.

 내가 밥벌이의 지겨움을 아는가, 그 당시에는 알았으나 일선에서 물러 나고 난 뒤 금세 잊었다. 단지 중국에 있던 유학시절동안 인력거를 타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기억은 있다. 타인의 고통은 나의 고통이 되었다. 나의 양심은 알량한 돈 몇 푼에 그의 팔다리를 욱신거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건 그의 밥벌이였다. 내가 그의 인력거를 타는 것이 그에게 도움이 될 것인가, 인력거를 타지 않는 것이 그에게 도움이 될 것인가라는 딜레마에서 나는 늘 갈등했다.

 비가 오는 날, 속이 헛헛한 날이면 설렁탕집을 찾는다. 이제는 아이를 데리고 설렁탕집을 찾는다. 해방 이후부터 설렁탕을 끓여낸 커다란 솥이 있는 작은 집이 아닌, 대형체인점으로 가서 어린이 설렁탕을 한 그릇 시켜주고 나도 한 그릇 시켜 먹는다. 아이와 먹는 설렁탕은 급하다.

대신, 혼자 먹는 설렁탕은 어쩐지 슬프다.

나는 그 마포의 그 작은 설렁탕 집에서 고깃내를 실컷 맡으며 전혀 가난해 보이지 않는 젊은 사내의 목소리를 들으며 부글부글 끓고 있는 설렁탕을 지긋이 바라본다. 그리고 그 설렁탕 집으로 나를 데려가 설렁탕을 사 먹였던 늙었던 그 남자를 생각한다. 그 사람은 나의 아버지였다. 나는 마포에서 설렁탕을 먹을 때 마다 아버지를 다시 마주치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다. 마포를 떠나 다시 그 집에 가서 설렁탕을 먹으려면 몇 번의 환승을 거쳐야 하는 상황이 되고 나서야, 아버지는 이미 이 나라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이제 마포에까지 가서 설렁탕을 먹지 않는다. 그저 커다란 체인점에서 급하게 밥을 먹을 뿐이다.

밥을 벌었는가. 오늘 나는 충분한 밥을 벌었는가. 나를 위해 밥을 벌고 있을 그 사람을 위해, 또 한 때 나를 위해 밥을 벌었을 두 사람을 위해, 나는 가만히 설렁탕을 바라본다.

 

200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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