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가치의 의미

고통과 폭력의 치하에서 매일 매일을 살다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얼마나 억압된 상태에 놓여 있는지 인지하지 못하게 된다.
심리학 용어로 “학습된 무기력”이라고 하는 상태에 빠져들고, 생명체는 생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특성을 지녔기 때문에 되도록 고통받지 않기 위해 나름의 방어기제를 발동시키기 마련이다.

어느 순간, 우연치 않은 계기로 그 세상에서 벗어나게 되면 그 때 자각이 일어나기 시작하고 자신이 얼마나 폭력앞에서 무기력하게 무너져 왔는가를 새삼 깨닫게 된다.

하나 하나 주워올리는 고통의 조각들은 생명이나 재산을 담보로 스스로 얼마나 무력하게 살아왔는가를 비수처럼 정확하게 아픈 곳을 다시 찔러준다.

그 고통의 과정에서 스스로 어떤 경험치를 가지고 연마를 해왔느냐에 따라, 사람은 그 아픔을 일일이 드러내어 치료하고 일어나기도 하고, 자책감과 자괴감에 빠져 완전히 넋을 놓기도 한다.

때로는 없는 자아를 창조해내어 정신질환자가 되기도 하고, 무기력에 빠져 다른 중독에 빠져 고통을 회피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정서와 정신 장애에는 분명한 폭력의 이유가 있다.

한 자아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타인의 행위는 폭력의 여러가지 형태로 나타나며 이 중에 신체적 폭력 외에 언어폭력, 방임, 통제 등도 포함되어 있다.

때로 한 공동체에서 정신적 나약함을 보이거나 특별한 정신장애를 보이는 경우는 가장 정상적이고 윤리적이며 비폭력적인 자아를 가졌을 개체일 가능성이 크다. 폭력의 치하에서 인정받는 방법은 같이 폭력을 배워 가해자의 아바타가 되는 것인데, 이런 개체는 그 사회에서 주목받는 강인한 정신력의 소유자, 즉 영웅으로 비견되기도 한다.

사람이 갖게 되는 여러가지 고통은 대부분 하나의 큰 이유로 통합될 수 있는데, 그것은 인간의 존엄성과 존재자체에 대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이다.

한 인간의 노동에 대한 가치, 한 인간의 존재와 존엄성 자체에 대한 가치를 잔인하게 묵살당하고 호도당했을 때, 사람은 죽음만큼의 고통을 느끼거나 혹은 그 죽음을 실천하여 스스로의 가치를 확인하고 자아의지와 실천이성이 살아 있음을 증명해보이고자 애를 쓴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회피하지 않고 맞서 버텼던 자들은 대부분 극단적 종말을 서슴치 않는다. 그러나 애초에 폭력의 가해자가 생존하는 한, 이러한 죽음 역시 다시 한 번 몰가치 해지는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크다.

승리는 살아남아 버티는 자의 것이고, 한 번 자각된 폭력의 세상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으려 하는 것은 당연한 인간의 순리다. 인간은, 아니 모든 생명체는, 태어나고 살아있는 그 자체로 존엄하여 존중받아야 할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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