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의 이유 – 아름다운 집
서울 신림동
Nikon D5000 Nikor 18-70mm / Digital Printing /
76.2cmX101.6cm (30X40) 액자 미포함 사이즈
2009. 11. 촬영
1st Edition – Digital Printing /76.2cmX101.6cm (30X40)/ 경기도 안양시 안양6동 이야기너머 작은 도서관 소장중
2006년 12월
돐이 되지 않은 아이를 데리고 우리는 갑자기 이사를 하게 되었다.
집주인이 바뀌게 되었기 때문이었고, 아이가 어려서 아파트 생활에 도전해보기로 했으나 근처의 아파트 단지들은 매우 낡았음에도 불구하고 값이 만만치 않았다. 세입자로 들어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친척의 정보로 옮기게 된 곳이 관악구 신림동, 난곡이었다.
나는 그 곳이 어떤 곳인지 잘 알지 못했고, 서울의 남쪽 끝, 안양에서 넘어가는 산비탈에 새롭게 거대한 아파트단지가 들어선다는 것만 몇 년 째 구경하던 차였다.
난곡이라는 지명이 무엇을 뜻하는 지, 내면에 숨어 있던 기억이 조금씩 불거져 나올 때쯤, 택시를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기사가 해 준 문구가 귀에 딱 박혔다. “난곡이 천지개벽을 했구나. 서울이 버린 동네. 대한민국이 버린 동네.” 인터넷으로 난곡에 대해서 검색을 해봤다.
난곡에 살던 사람들을 밀어내고 대한주택공사가 지은 아파트단지는 2300여세대.
주공 1단지와, 2단지, 그리고 그 밑에 영구임대주택은 3단지로 분류되었으나, 길이 나뉘어져 있었고, 입구도 완전히 달랐다. 분양가는 평당 1200만원에서 평당 1400만원. 월세는 24평 기준 5000만원 보증금에 월 70만원 정도. 안양의 삼막사에서 경인교대앞을 지나 호암터널을 지나는 산길에서 내려오거나, 난곡사거리에서 올라오는 그 길의 아파트 단지는 신림역보다 해발 300미터 정도가 높다는 소문이 있었고, 피부로 느낄 만큼 확연하게 날씨가 달랐으며, 산안개가 20층이 넘는 고층 아파트의 꼭대기를 감싸고 돌 때가 있었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성채, 사람이 살아서는 안되는 불길한 예감이 흐르고 있다고 미친 척 지껄여도 신빙성 있게 들릴 만큼, 때로는 신비롭고, 때로는 기괴한 분위기를 뿜어낼 줄 알았다.
봄이 되면 산에서 아까시 냄새가 흘러내려왔고, 밤꽃 냄새가 지천에 진동했다. 조금만 걸어올라가면 관악산과 삼성산으로 올라가는 등산로가 펼쳐졌고, 차 지나가는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절간 같은 곳도 있었다.
이 곳에 살던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갑자기 트럭에 실려 자 이제 여기서 한 번 살아보라고 강제로 이주 당해 몇 십년을 일궈먹고 살면서 골목과 골목을 통해 같은 화장실에서 똥을 싸고 오줌을 싸고 옆집에 수저가 몇 개 인지, 누구네 서방이 마누라를 얼마나 두들겨 패는지 적나라가 알 수밖에 없던, 모든 집을 지나가야 꼭대기로 올라갈 수 있었다는 구비구비 돌아가던 난곡에 살던 사람들은 그 아파트에 단 한 사람도 남을 수 없었을 게 뻔했다. 원주민이라고 말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모두 승용차를 끌고 다니고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냈으며, 대부분 대학을 나왔고, 좋은 직장에 다녔다. 딱지를 사서 들어왔다는 이야기는 비밀도 아니었으며, 그게 무슨 문제가 되는지 나는 알 지도 못했다. 나는 세입자였으므로.
그 성채로 들어설 때마다 부채의식에 시달렸다.
그런 나에게 무슨 그런 생각을 할 필요가 있냐고 낯선 이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가난하고 못 배웠다면, 공기라도 좋은 데 살면 안되나. 단 하나 남은 천혜의 것. 달이 가까운 동네라는 게, 우리나라야 척박한 도로 환경으로 인해 산동네 달동네가 빈민가가 되었지만, 아침마다 들려오는 새소리와 쏟아져 내려오는 꽃냄새를, 누군가가 눈물 흘리며 쫒겨났을 거라는 그 땅에서 가만히 앉아 맡는다는 것도 힘겨웠다.
내 양심에 발린 소리였던가.
간혹 나는 삼성산 아래 고시촌을 떠돌다 6동 시장이라 부르는 재래시장에서 아이를 들쳐업고 장을 보고 마을버스를 타고 올라왔다. 그러던 어느 추운 겨울날, 저기 어딘가 사람이 살고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삼성산 성당의 뒷길을 하염없이 걸었다. 그리고 이 집을 만났다.
아파트가 밀어내지 않은 골목. 이 집은 몇 평이나 될까.
이 집이 열평이라면, 평당 1200만원 시세를 적용하면 1억 2천짜리 집이 될테지만, 그렇지 않다는 건 너무나 빤한 일.
고마웠다.
내 어린 날, 화장실을 가기 위해 어두운 산길, 휴지를 쥐고 마구 내달려야 했던 기억처럼, 아무 것도 없고, 설령 부모는 끼니걱정을 하더라도, 엄마 아빠가 집에 있어서 좋아. 라고 뇌까렸던 철없으나 암울했던 그 시절처럼, 완전히 색이 바랜 가림막에도, 여기, 살아 있어줘서 고맙다고.
내 알량한 양심에, 조금 기름칠을 해 준 셈이라 고맙다고.
보증금 5000만원에 월세 70만원을 내면서 일곱식구일지, 여덟식구일지 모를 사람들을 내 쫒은 자리에서 내가 두 발 뻗고 살고 있지 않다고 변명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게끔. 나, 당신을 안다고 말할 수 있게끔. 말해줘서. 고맙다고. 그렇게 기념한, 겨울의 풍경이다.
2013. 2. 1.
_최근들어, 이 사진에 대해서 설명해야 할 일이 생겨서 적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