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섭다는 말

예민한 아이는 새벽녘 제 부모의 숨결이 느껴지지 않으면 곧잘 잠에서 깬다.
새벽 2시 50분. 자리에서 일어나 멍하니 앉아 있던 아이가 에미를 부른다.
엄마 저기 뭐가 있어.
엄마 저기 뭐가 이상해.
빛에 비친 그림자였거나, 안방에 숨어 들어온 늙어가는 개였을게다.
괜찮아 괜찮아. 아이를 다독여 다시 재우고 나도 모르게 아이가 가르킨 방향을 외면한다.

무섭다는 말.
언제 해봤을까.
기억이 없다.

아이 무서워.
아이 두려워.

이 아이는 나를 대신해, 무섭고, 두렵다는 것을 이야기 해 주는데,
내 기억속의 나는 당췌, 무섭다는 말을 입밖으로 내뱉어 본 적이 없다.

아이가 묻는다.
엄마는 세상에서 뭐가 제일 무서워?
글쎄…
한 참을 생각해도 싫은 건 있어도 무서운 게 뭔지 알 수가 없다.

그렇게 견고하게 만들어 온 밖에 내세우기 위한 자아는 이제 세월의 더께를 입어 더욱 더 곤고해진다.
딱딱하게, 움직이지도 않고, 석고상에 이끼가 끼듯.
무섭다는 말, 해 본 적도 없이, 이제는 무섭다고 말하기도 쑥스러운 나이를 먹었다.

그 모든 것들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스스로 무장하여 갑옷을 입혀 대문앞에 세워놓은 저 것이.
이제는 나인 척 하고 수십년을 살아서, 자기가 나 인 줄, 내가 자기인 줄, 나도, 그것도 착각하고 있다.

경리장부 20년 주물러, 자기가 대표이사 인 줄 아는 경리직원처럼.
그렇게 되어버렸다. 주객의 전도.

무섭다는 말.
누구에게 할까.

어느 봄밤, 아이를 재우고 나와 벚꽃 사진을 찍는 나를 마주쳐, 술에 취한 채 흐느적대면서, 옆에 한 참을 아무 말 없이 서 있던 그 날의 당신을
이 밤, 생각한다.
생각한다.

110420_Nikon 026

2013 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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