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의 반복

내재된 폭력의 기억이
다시 폭력을 부른다.
인간에게 복수심이란
존재를 유지하려는 관성,
혹은 형평성을 뜻하는 것인가 생각한다.

굳이 누군가에게 복수하겠다는 구체적인 마음을 갖지 않고 고상한 마음의 수련이나, 또 다른 행동의 승화로 변질되었을 때도, 잠재의식속에 숨어서 치유받기 매우 어려운 그 수많은 폭력의 기억들이, 타자를 향해, 혹은 자아를 통해 다시 발현된다는 것은.

그 모든 것들이 폭력인 줄 인지조차 하지 못하고 살았던 세월동안, 폭력은 이미 영혼 깊이 각인되어 살아가는 방법의 하나로 자리를 잡아 버린다.

각성이 일어나고 그 마음과 몸의 표현들이 모두 대단한 폭력성을 띄고 있었다는 것을 인지한 다음엔, 이미 살아가는 방법과,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서 다른 여지를 다 차단해 버린 후다. 그리하여 가치관의 붕괴와 세계의 몰락이 동시에 발생하고 쉽게 이름 지을 수 있는 “우울증” 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몇 가지의 약물로 감정이 전달되는 시냅스들의 연결을 차단하고 깊이 사고하지 못하도록 나른한 육체를 만들어주어, 그 당시의 제 2의 반사적 폭력사태를 면하게 도와준다.

그러나 내재된 폭력의 문법을 고치는 방법은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고 세상엔 이미 혼자다.

세상의 모든 이는 천상천하 유아독존. 삶은 언제나 자기 중심으로 돌아가고 하나의 인간개체에겐 오직 하나의 우주가 존재하며 그 우주엔 오롯이 그 우주의 주인 단 하나다.

고립된 채 다른 세상의 문법을 배우는 일은 어렵다. 언어는 늘 타자를 모방하면서만 배울 수 있다. 모방이 불가할만큼 폭력에 길들여진 채 세월이 지나버리면, 반복되는 것은 좌절과 좌절의 연속이다.
게다가 이미 인간과 사회에 대한 맹목적 신뢰 없이 불신마저 무럭무럭 자라난다면.

그 이후는 걷잡을 수 없는 카오스.
그 누구도 사전에 막을 수 없고 오로지 결과, 상처와 폭력, 혹은 시체만이 남곤 한다.

2013. 0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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