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은 꿈이다

나에겐 386세대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내가 겨우 초등학교를 다닐 때쯤 종로에 나가면 최루탄 냄새가 가득했고 학생들은 늘 “데모” 중이었다. 
비싼 등록금 내주고 소팔고 논팔아 학교 보내줬더니.. 하는 세대는 그 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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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생계를 책임지는 엄마의 작업, 그에 필요한 재료를 사러 엄마와 강북시중심을 돌다보면 늘 백골단과 마주쳤고 최루탄이 어디 터지나 신경써야 했다. 
 
나의 엄마는 67학번쯤 되는데, 야간통행금지에 걸렸다가 풀려난 이야기, 닭장차라고 하는 저 탈 것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었다. 박정희가 화폐개혁을 또 한다더라 는 말을 포장마차에서 했다가 막걸리보안법에 걸려 몇 달동안 생사를 모르다 다리를 못 쓰게 되어 나타난 거래처 아저씨의 인야기를 전하며, 이 나라에서 데모를 하는 것은 삼대가 망할 일을 애써 도모하는 것이며, 여자의 경우 성고문도 비일비재 하니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는데, 오히려 엄마가 이야기를 전하는 그 어법은 무용담과 같아서 나에겐 환상적인 저항의 문법이 되었다. 
 
사람을 마구 잡아가고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버리는 정부가 있다고 알려준 것은 역설적으로 “절대 데모꾼이 되어서는 안된다” 라고 강조했던 엄마였다. 그 때 엄마의 언어를 가만히 생각해보면, 엄마도 뭔가 그 “데모꾼” 들에 대한 호의가 있었다. 말하자면, 그들의 용기와 체제전복에 대한 꿈과, 사생활과 가족의 생계보다 더 큰 대의를 생각할 수 있는 그들에게 계급이라는 것을 덧붙여 나와 다르지만 그 팔자도 나름 부러운 상황이었던 것 같다. 
나의 모친이라는 사람은 자신의 밥그릇을 포기하고 대의를 택할 사람이 아니었다. 엄마에게는 늘 자신의 생활과 자신의 몇 안되는 혈육을 지키는 일이 가장 중요했고, 어떤 대의가 사회적으로 실천될 때, 약간의 혜택을 조금 더 특별하게 받고자 했다. 그건 본인이 끊임없은 불가항력의 힘에 이끌려 인생의 파도를 고스란히 맞아야 했던 것이 억울함으로 남았고, 그에 대한 미미한 보상을 세상에 요구하는 것이었다. 
 
당신은 그렇게 살아왔는데도, 결과적으로 나에겐 엄마가 투쟁해야 할 권력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엄마의 규칙대로 살길 바랐던, 그것도 매우 강경하고 카리스마가 심한 사람이었으므로, 나에겐 저항의 문법이 필요했다. 어릴 때는 욕지거리를 배워 사용해보기도 했지만 이후엔 사회적으로 여러가지 메커니즘이 얽히고 설켜 결국 내 삶에도 크나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걸 느낀 건 아마 중학교 때쯤이었다. 
그래서 생각한 게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거였다. 그게 내가 열 네살쯤 때의 일이었다. 전교조가 시작되었고, 6월 항쟁이 코 앞에 다가와 있었다. 당시 시사저널은 좋은 언론이었고, 한겨레가 창간되기 전이었다. 그 때 선두에 서 있었던 사람들이 386이었다. 전교조를 시작한 나의 선생님들은 1960년 생부터 시작되었고, 나는 그 분들의 “애제자” 로 쉽게 발탁되었다. 그 분들이 읽어보라고 적어준 책의 리스트는 점점 늘어나, 해방전후사의 인식과 전태일 평전에까지 이르렀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가 따로 있었고, 그들이 즐겨 읊는 시가 따로 있었으며, 그들에게 가치가 있는 작가는 따로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답습하고 싶었다. 그 이유는, 아마 그들은 저항할 줄 아는 사람들이라는 인식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가 386의 정서를 많이 흡수한 것은 내가 만났던 그 세대의 사람들이 줄곧 나에게 친절했기 때문이다. 
 줄곧 그들은 나에게 무언가를 가르쳐주려 했고, 나는 기쁘게 그것들을 받아들였으며, 더욱 익숙해졌다. 그러다 보니 다시 그들에게 환영받는 입장이 반복되었다. 
 그들이 대열에서 벗어나 각자 흩어지고, 우리세대는 한총련의 마지막을 맞이했으며, 나는 그 입시전쟁에서 복합적 이유로 밀려나 그 대열에 끼지도 못했는데, 대열은 연세대 사태로 와해되었다. 그리고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조국을 휩쓸었다. 대학 가서 뭔가 해 볼 것 같던 친구들은 취업에 몰두했고, 그들은 높은 소득이 보장되는 전문자격증을 따기 위한 삶을 살아갔다. 나 역시, 그런 대의나, 저항에 대해서 잊고 살았다. 그 때, 우리가 저항했던 적들은 모두 시야에서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그 적들은 땅으로 스며들어 우리들이 마시는 물까지 오염시켰다. 그게 바로 경쟁과 경제위주의 삶, 약육강식, 적자생존, 2등은 기억하지 않는 시기가 2002년 월드컵과 노무현을 어깨에 메고 시작되었다. 
 
 2002년 종로서점의 폐점이 이 시대의 시작을 울리는 경고였다고 생각한다. 
 월드컵이 열리고 광장에 사람들이 모여 레드컴플렉스를 극복한 것처럼 보였지만, 그건 컴플렉스를 극복했다기 보다, 이념을 버리고 소비를 택한 소비자의 시대가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노무현이 대선에 승리한 것으로 진보진영이 한 발 나선 것처럼 보였지만, 그 때 부터 사람들은 선거나 투표권이 소비자의 권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만일, 전두환이 이 시점에 다시 출마를 해, 숨겨둔 돈이 100억조 정도 있는데, 그돈으로 시장경제를 다시 활성화 시키고 당신들의 아파트값을 유지해주며 해외정복을 시작해 부동산 경기를 재 점화하겠다는 공약과 함께 실천을 시작한다면. 나는 전두환도 재선에 이길 수 있을 것만 같다. 
 물론 광주에서는 곡소리가 이어지겠지만, 이미 그런 것들은 괘념치 않는 사회 아닌가. 북한 주민들을 그리도 걱정하는 사람들이 한 국가의 테두리 안에 살고 있는 5월마다 제사상이 이어지는 광주를 잊고, 대추리를 잊고, 노근리를 잊고, 자살자가 가장 많은 동두천을 외면하고 지내지 않던가. 
 
 이 시대가 진보가 그나마 밥술 좀 얻어먹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실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해도 괜찮을 것 같다.
 이 시대는 위험사회(율리히 벡), 그리고 고도성장이 멈춘 것을 모두가 암묵적으로 동의한 상태, 그리하여 더 이상 발전하거나 팽창하지 않을 각자의 재산에 대해서, 그 재산을 빼앗기면 가난과 죽임과 파산과 종말이 또아리를 틀고 있다는 공포에 사로잡힌 시대, 그래서 이 사람들은 더욱 더 보수保守적일 것이다. 자기의 것을 지키기 위한 것. 그 지키기 위한 방패로 누군가는 진보를 택하고 보수진영을 택할 뿐, 진정한 이데올로기에 의한 선택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쩌면 이제는 진보나 보수라는 구분 자체가 모호한 상태이다. 성장을 하기 위해 파괴를 서슴치 않아야 한다는 종(縱)적 팽창에 대한 주장인가, 혹은 성장을 멈추더라도 나누면서 가야한다는 횡(橫)적 팽창을 꿈꾸는가 그 정도의 차이다. 
 
 나에게 꿈과 저항을 알려준 386세대는 지금 50대가 되었고, 이번 대선을 지나면서 극명한 분열의 단초를 제공했다. 
 시사인에 만화를 그리는 굽시니스트는 “50대 이상 평범한 엄마들이 아는 유일하게 친근하고 스토리가 있는 정치인”으로 박근혜의 당선이유를 조심스럽게 추정했다.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대선이후 멘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또 누군가는 당연한 귀결이라고 뒷짐을 지고 있다. 이리 저리 여러곳에서 모두 실망한 사람들은 대통령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으며, 국민수준이 더 중요하다는 이상적인 생각을 하기도 한다. 
 
 386이 대열에서 벗어날 때쯤, 신자유주의, 혹은 경기 부양의 마지막 정점을 향해 그래프를 바짝 끌어올리는 총력전을 벌이고 있을 때, 이들은 후배들을 양성할 시기를 놓쳤다. 많은 후배들이 대열에서 벗어나 어학연수를 떠났고, 혹은 돌아오지 않았고, 혹은 학위를 따서 금의환향했다. 
 어떤 50대가 나에게 말했다. ‘가난과 전쟁을 직접적으로 겪지도 않은 세대 아닌가. 중학교 입시와 고등학교 입시가 사라졌던 세대가 아닌가. 중학교부터 대학교까지 그렇게 쉽게 간 세대가 단군이래 없었을 것이다. 취직도 얼마나 쉽게 되었던가. 학교 앞에 대기업의 차가 와서 학생들을 모시고 가던 세대다. 취업을 하고 나서 경기는 얼마나 좋았나. 10% 성장율까지 보인 고도성장의 세대다. 세계 역사상 그런 유래가 없을 만큼 실컷 먹고 잔치 벌린 가장 풍족한 세대가 아닌가. 그러면서 뭐가 힘들다고 징징대는 지 나는 이해할 수 없다. 나도 50대지만, 우리는 정말 편하게 살았다.’ 라고.
 
 그 사람의 이야기에 바로 다른 50대가 “그건 당신 생각”이라고 일갈했지만,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럴 수도 있었겠군. 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덤으로 억울함이 솟구쳐 올라오기도 했다. 
 
 인간이 사는 세상은 적어도, 
 기본 규칙과 규율이 있고, 그에 대해서 변치 않는 적용이 있고, 열심히 하면, 이렇게 가면, 성실히 하면, 이 길이 正道다. 라는 룰이 지켜져야 하지 않나. 
 이제 인생의 절반정도를 살았는데 지금 느끼는 것은 나보다 어린 세대, 혹은 내 자식들이 엄마 이 길이 正道인가요? 라고 묻는다면..
글쎄..어떤 인간이 정권을 잡고 누가 교육감이 되고 누가 입시제도에 손을 대느냐에 따라 정도가 달라지지 않을까? 라고 반문할 수밖에 없다. 
 
아랫세대들에게 정답과 규칙을 가르쳐 줄 수 없는 세상. 그 때 그 때 다르다고, 융통성있게 살아야 한다고. 정답은 없다고 말할 수 밖에 없는 게 오늘의 현실. 
 
공분을 논하기 바쁜 인터넷 場에서 조만간 “경상도 50대 개새끼론”이 등장할지도 모르겠다. (용어에 광분하지 마시라. 한 때 20대 개새끼론이 유행이었다.) 
저항할 게 없어서 더 이상 저항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제 그냥 맥이 빠져버린 것이다. 
 
저항은 언제나 지속된다. 운명에 대해, 관습에 대해, 삶에 대해, 불가항력적인 권력에 대해, 내 욕구에 대해, 인간은 끊임없이 저항해야 발전할 수 있다. 
그러나, 저항이 모든 이에게 善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저항은, 저항하고 싶은 자에게만 가치가 있다. 
 
그런데, 맥 빠져 버린 이 나라 사람들은 왜 몇 백년전 실패한 혁명의 이야기 “레 미제라블”에 이렇게들 광분하시는지. 
당신들의 마음속에 장발장에게 투영한 그 부글거리는 욕망의 실체는 무엇인지, 들여다 본 적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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