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계절

셀프주유소에서 카드를 긁고 있는데 (순서상 카드 먼저 긁고 주유) 주유소 아저씨가 다가오신다.
아저씨가 주유총을 잡으시고 물으신다.
할 줄 알아요?
아저씨 라기엔 연세가 많으신 편.
아버지 뻘도 더 되신 듯 하다.
네! 잘 합니다! 라고 씩씩하게 대답했다.

아저씨는 총을 잡다가 놓고 한 번 해보랜다.
익숙하게 걸쇠를 딱 받쳐놓으니 어 정말 할 줄 아시네 하신다.
예전에 알바도 했었습니다. 오래전에요.
아저씨가 씩 웃으신다. 그러냐고.
한 16년전쯤이죠. 라고 했더니 그 때도 셀프주유소가 있었냐고 물으신다.
아니요.
순간, 경유차와 휘발유차를 구별하고 차종마나 주유구가 달랐던 걸 기억하느라 종종걸음치던 그 겨울이 떠올랐다.

아저씨가 다시 물으신다.
그럼 한 서른 대여섯됬나?
서른 여덟입니다.
아 그럼 토끼띠인가? 하셔서 네!
하니 아저씨 아들이 토끼띠라 잘 아신다 하신다.
우리 아들은 토끼띠 6월 생인데..
저는 음력으로는 7월입니다.
한 달 늦게 나왔구만 하던 아저씨의 주름진 얼굴 위로 다시 한 문장이 지나간다.

그 해 여름은 진짜 더웠지..
애엄마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몰라.

37년전 여름, 더웠던 것을 기억하는 노년의 남자는, 당시 젊은 아빠로 아내가 만삭으로 힘겹게 땀을 흘리던 장면을 떠올렸을 것이다.

정말 더웠다고 말했던 엄마가 떠오른다.
그리고 주유소에서 산같이 쌓인 머슴밥을 막던 겨울의 공기가 코끝에 스치던 그 계절도 떠오른다.

한여름의 열기를 기억한 늙어가는 남자와
한겨울의 공기를 기억하는 내가 주유소에서 노란 노즐을 잡고 섰다.

지금은 봄,
이 역시 또 누군가에겐 특별한, 아주 특별한, 40년이 지나도 잊지 못할 그런 공기겠지..

2012. 4.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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