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는 것 버려지는 것

전복을 먹어봐야 전복이 어떻게 생겼는지 아는 것은 아니다.
소고기를 먹는다고 내가 도축을 하는 것은 아니므로.
내가 먹는 먹거리들에 대해 나는 얼마나 알고 있는가에 대해 생각한다.
내가 먹는 콩나물이 어떻게 길러지는지, 내가 먹는 시금치가 어디서 왔는지, 비가 잦아서 작년 시금치 농사가 나빴다는데, 수퍼와 마트엔 어떻게 줄줄이 시금치가 나와 있는지.
규격을 맞추기 위해 비닐봉투 안에서 자라는 애호박을 보며 간혹 참담함을 느낀다. 마치 고등학교 시절에 추운 날 잿빛 교복을 어쩔 수 없이 입고 베개만한 쿠션을 끌어안고 강당으로 줄줄이 걸어가던, 거세된 젊음이 자꾸 생각난다.

누군가에게 힘이 될 음식을 만들기 위해 세일하는 전복을 샀다가 냉동실에 얼려두었다. 전복은 나에게 오기 전에 푸른 바다의 파도소리를 들으며 살았겠지. 어린 아기의 새끼손톱보다 작은 빨판으로 뭔가를 먹으며 몸을 키웠을테고 내가 잘라내 버린 빨간 입으로 바다의
파도를 마셨을것이다.
전복의 사이사이에 낀 검정들을 깨끗하게 씻어내며 그간 찾아뵙지 못한 아쉬움과 죄책감을 함께 씻는다.. 라고 적어도 괜찮겠다.

무언가를 보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고등어를 보면 생각나는 사람 있고, 갈치를 보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오래전엔 그 떠오르는 사람들이 헤어진 옛 애인이거나, 지금은 연락조차 되지 않아 마음 한 켠이 무거워지는 슬픈 사연의 어떤 여인.. 그런 사람이었는데, 그 기억의 연상의 대상들은 세월이 지나고 내 삶의 변화에 발맞추어 다른 대상으로 변해왔다.
이제는 갈치를 보면 생각나던, 파출부 다니며 일수써서 까르띠에 가방을 사던 너무나 무거운 삶을 살던 정아언니가 아니고, 갈치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는 내 아들이다.
샤브샤브를 보면 생각나는 사람은 육수를 기가 막히게 만드는 시동생이고, 고등어를 더 이상 못 먹게 된 남편이 생각나고, 계란을 보면 계란하나로 대여섯가지의 요리를 만드는 열여덟살 딸아이다.

그리고 이제 전복은 나에게 시어머니를 부른다. 시어머니의 부엌 씽크대엔 전복껍데기가 있다. 그리고 그 위엔 날긋한 초록색수세미가 있다.
“너무 고와서 버리기가 아깝잖니” 하시는 어머님을 생각하며 전복죽을 끓인다.
그리고 나도 전복껍데기에 붙은, 내가 미처 떼어내지 못한 살점들을 뜯어낸다.

묻는다.
무엇이 되겠느냐.
너희들의 살점은 병든 육신에 큰 힘이 되길 기원하니, 너희들의 고운 껍데기는 누군가에게 칠보가 되어, 장롱이 되기도 하고, 미술품이 되기도 하고, 화장대가 되기도 하고, 귀중한 것들이 된다고.

나는 칠보를 만들 줄 모르니, 수세미라도 올려놓고 너희를 기억하려고.
그리고 그 고운 빛 볼 때마다..
지나간 젊은 어느 날, 담양의 대나무숲에서 바람 맞고 앉았을 내 딸래미만한 열여덟의 어느 처녀를 생각하며.
전복껍데기를 보며, 너무 예뻐서 버리기가 아깝다는 시들지 않은 젊음을 꼭 기억하리.

2012. 4.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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