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야가 불편한 이유

며칠 전 불거졌던 한비야 인터뷰에 대한 갑론을박.
그에 대한 불쾌감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문제가 되었던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이다.

젊은이의 꿈이 7급 공무원이라고 해서 정신차리라고 한 대 때렸어요. 라는 이 부분.
물론 뭐 한비야씨가 뺨을 때렸겠는가 물리적으로 치명적 폭행을 했겠는가.
그저 그는 정신차려. 하면서 친한 이모의 얼굴로 팔뚝이나 한 대 찰싹 때렸을 것이다..라고 추정된다.

그 부분을 조금 더 확대해서 맥락을 살펴보도록 한다.

자, 한비야씨의 의도는 이런 얘기였다.
왜 젊은이들이 꿈을 갖지 못하는가.에 대한 이야기.
그의 인터뷰 전문은 아래 링크이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14511.html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젊은 세대를 거쳐온 나로서, 혹은 아직 그 젊음을 놓지 않은 30대 후반의 아줌마로서, 나는 이 사람의 이런 화법이 매우 불편하다.

한비야라는 사람은 젊은 시절, 좋은 직장을 다니다 때려치우고 전세계를 누비며 한국에 배낭여행 붐을 일으켰다. 그리고 어느 날 난민구호활동가로 변신해 여전히 전세계를 누비며 맹활약중이다. 흡사 영웅의 탄생을 보는 느낌이다.

어릴 때 아버지가 지도를 붙여주셨다는 그녀의 일화나, 과감하게 높은 연봉의 직장을 때려치운 자신의 선택에 박수를 보내는 자화자찬의 힘은 나를 늘 불편하게 했다.

그건 내가 직장을 때려치우면 닥치게 될 여러가지 경제적 문제, 쉽게 말해 먹고 죽을 돈도 없어질 게 뻔한 상황을 내가 겪고 있던 시절에 그녀가 왕성한 활동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쉽게 요즘말로 해서 “열폭(열등감 폭발)”이 쩌는거라고 봐도 할 수 없다.

자, 그리하여 그녀는 이 사회의 지도층 인사가 되었고 젊은이들에게 환영받는 정신적 멘토로 군림하게 되었다. 가슴이 뛰는 일을 하라고 그녀는 쉽게 말한다. 그러나, 문제는, 너무 쉽게 말한다는 것이다.

가슴이 뛰는 일을 하고 싶은 젊은이들은 쌔고 빠졌다.
서른이 되어서 직장을 바꾸고 싶은 젊은이들도 널렸다.
학자금 융자를 겨우 갚았는데 주변에선 결혼 안하냐고 눈치를 준다. 요즘, 대놓고 시집가라 장가가라 하진 않더라도 뭔가 도태된 느낌에 사로 잡힌다. 야근에 특근에 출장을 다니느라 연애할 시간도 없는 후배들이 있다. 이직을 준비했다가 부모님의 건강악화로 일단 닥치고 여기 붙어 있어야겠다고 마음 접은 후배들도 있다. 뭔가 다시 인생을 시작하려고 했는데 가족중의 누가 아프다. 뭔가 다 때려치우고 떠나려고 했는데 가족 중의 누군가 파산직전이다. 이혼한 형제의 아이를 떠맡는다거나, 사고를 당한다거나, 부모님이 부동산 붐의 마지막 버스를 탄 게 화근이 되어 온 가족이 대출이자를 갚아나간다거나, 애시당초 취직이 안되서 비정규직으로 도느라 학자금 융자를 해결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 빚만 남겨놓은 부모님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다거나, 가족들의 부채가 개인의 부채가 되고 물려지고 남겨지고 내 몸뚱이 하나 누일 집 한 칸 자유롭지 못하다.

이 시대의 젊은이들은 대부분 가슴이 뛰는 게 오히려 원망스럽다.
차라리 아무 꿈도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하고 싶은 게 차라리 없었으면 얼마나 속이 편했을까. 예술따위 몰랐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여행 같은 거 진저리 나게 싫어했으면 얼마나 편했을까. 남들처럼 직장 다니면서 네네 하고 집에 가서 티비 보고 자고 그리고 다음날 똑같은 생활을 해도, 아 나는 참 행복해. 라고 느낄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여행이나 꿈이나 가슴 뛰는 일은 커녕, 넓지는 않아도 자유로운 원룸 하나 구했으면 좋겠는 거다. 고시원도 지겹고 옥탑방도 싫고, 뭔가 좀 깔끔하고 잡지에 나오는 집에서 맘에 드는 작은 소파 하나 놓고 음악 듣고 책 읽고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이 세대의 꿈은 진즉에 위축되고 축소되었다.

어른들은 말한다. 쉽게. 너무 쉽게.
너희들이 열심히 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너희들이 다 잘 못 자란 탓이라고.
너희들이 나약해서 군대에서 적응을 못하고 자살하는 거라고.
너희들이 나약해서 비정규직을 못 버티는거라고.
가카도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는가.
나도 다 해봤다. 나도 뻥튀기 장사 노점상 다 해봤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씨발.

기성세대는 왜 젊은이들에게, 아우들에게 부채의식을 가지지 않는가.

당신들이 만들어놓고 발 빼버린 이 세상에서 우골탑이 모골탑이 되는 기가 막힌 등록금을 빚까지 내가며 학교를 졸업했다. 그런데 당신들이 일자리를 주지 않는다. 그러면서 우리가 나약하다고 말한다. 우리가 뭐가 나약한가. 우리는 당신들보다 영어도 잘하고 제2외국어도 하나쯤 한다. 단군이래 최대의 스펙이다. 기가막힌 프레젠테이션을 보여줄 수 있다. 비정규직도 잘 할 수 있다. 우리는 유머도 넘친다. 당신들이 적응하지 못하는 모든 새로운 기기와 네트워크에 우리는 찰싹 달라붙어 안착할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가 모자라고 부족한가.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젊은이들을 비난한다.
학교폭력도 애들 탓이고, 노스페이스을 입은 아이들도 다 아이들 탓이다.
요즘 애들이 이상해서 그렇다.
요즘 애들이 다 철이 없어서 그렇다.

어떻게 그게 다 아이들 탓인가.
아이들은 고스란히, 우리를 보고 자랐다.

7급 공무원의 꿈이 왜 나쁜가.
그게 가슴뛰는 일이 되면 왜 안되는가.
스펙 쌓고 대치동 아파트에 살면서 포스코 옆에서 점심을 먹는 게 꿈이예요. 라는 게 왜 나쁜가. 그런 꿈을 꾸게 해 준건 바로 우리들 아닌가. (나는 솔직히 빠지고 싶다만)

나도, 그런 이야기 듣고 살았다.
지금 자면 꿈을 꾸지만, 안자면 꿈을 이룰 수 있다.
4당 5락,
니들이 조금만 참으면 남편 연봉이 바뀐다.
억울하면 공부해.
억울하면 의사해.
억울하면 판사돼.
억울하면 니가 선생해.

아무도 공부는 네가 하고 싶을 때, 나중에 해도 괜찮아. 라고 말해주지 않았다.
지금 공부하지 않으면 네 인생은 끝장이다 라고 말했다.
대학에 떨어지면 대학을 못가면 평생 후회할 것이다 라고 말했다.
공부하면 돈 벌 수 있다고 했다.
공부만 하면 돈 벌어 좋은 아파트, 좋은 직장, 좋은 차를 타고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의 목적은 공부를 통해, 그걸 수단삼아, 결국 돈을 얻는 것이었다.
넓은 아파트와 수입외제차와 명품가방을 들고 빙글빙글 도는 회전문을 밀고 대기업의 조직원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면 인생은 탄탄대로가 된다고 말해줬지 않나.

그렇게 주입 받고 자라 대학을 가보니 등록금때문에 결국 빚을 져야 하고
인생 최단기간내에 가장 먼저 해야 할 To do list 1순위는 학자금 대출 해결. 이 되었다.
학자금 대출 해결을 하고 나니 부모님이 여기 저기 아프기 시작한다.
독립해야 하는데 엄마 아빠 병원비 약값 하시라고 용돈을 내놓는다.
그러다 보니 나이를 먹었고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고 결혼을 해야 하는데 돈이 없다.
여태 돈 못 모으고 뭐했냐 소리도 듣는다.
가끔 모아놓은 돈이 있는 젊은이도 있다.
결혼 비용으로 모두 날린다.
그리고 대출을 받아 집을 산다.
대출을 받아 혼수를 장만한다. 신혼 첫날밤 서로의 마이너스 통장을 깐다.
덜커덕 아이가 태어난다.
대출이자 갚기도 전에 애 교육비로 가계부가 뻥뻥 빈다.
노후대책 개뿔 같은 소리, 아이들은 다시 입시전쟁터로 내밀린다.
여기서 갈등한다.
다 엎어야 하나.
이대로 가야 하나.

이제 가슴이 뛰는 건 심계항진이다.
대출이자날짜가 돌아오면 가슴이 뛰고, 카드값 고지서가 날라오면 가슴이 뛴다.
연봉협상 날짜가 다가오면 가슴이 뛴다.

가슴은 열심히 뛴다.

이런 상황에 한비야가 말하는 가슴이 뛰는 상황은,
7급 공무원이 되어, 대출이자 뻥뻥 갚아나가고 원금도 갚고, 이 집도 은행것이 아닌 내 것이 되는 거다. 얼마나 가슴뛰는 일이냐. 눈물이 줄줄 나는 일이지.

사회의 기득권이 되고, 지도자급이 되었으면,
왜 이 청년들이 가슴뛰는 일을 찾지 못하는가 시스템의 오류를 파악할 줄 알아야 한다.
모든 것이 개인의 잘못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나라의 민주화가 늦게 온 게, 이 나라에 IMF가 온게 개인의 탓인가?
이 나라에 식민지가 온 게 개인의 탓인가?
당시의 청년들이 열나 빌어먹어서 식민지 됬다고는 말하지 않으면서 왜 지금 개인이 게을러서 꿈을 꾸지 못한다고 쉽게 말하는가.

시대를 관통하는 구조의 오류는 늘 존재한다.
그건 1%가 자신의 사욕을 채우기 위해 자신의 권력욕을 만끽하기 위해 상식밖의 일을 수없이 자행할 때 벌어진다. 99%를 돕기 위해 나선 사람이라면 1%가 만들어 낸 비상식적인 사회를 인정하고 99%를 도와야 한다.
한비야 그녀도 1%가 아니다.

웃기는 건 이 나라의 대부분 25%쯤 되는 사람들이나 10%쯤 되는 사람들이 자기가 무슨 1%나 된 듯 착각한다는 것이다. 사회의 1%는 대부분 눈에 띄지도 않는 곳에 숨어있다. 보이지 않는 불안한 악이 되어, 블레어 위치의 정체모를 영혼처럼 여기 저기서 툭툭 튀어나와 공포를 조장하는 것이다.

한비야의 다른 행보에 대해선 비난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7급 공무원의 꿈에 대해 비난한 그녀의 가벼움은 철저히 비난하고 싶다.

왜 모두가 성공해야 하고
왜 모두가 리더십을 가져야 하는가.
바닥에 좀 납작 엎드려서 편하게 사는 게 과연 죄가 되는가.
세상은 오히려 그런 사람들로 인해 순조롭게 돌아간다.

한반에 25명을 몰아넣는 유아학교에서 “리더십교육” 운운하는 것도 지랄하고 자빠진 일이다. 모두가 리더십 교육을 받아 리더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면 그게 무간지옥이지 학교인가 사회인가.

얼마전 딸아이의 친구를 만났다.
성적은 바닥이지만 태권도를 오래 했다.
전공은 정보컨텐츠학과인 실업계를 다니는 친구다.
전공에 관심이 있느냐 물으니 관심이 좀 있다고 했다.
하드웨어 쪽이냐 소프트웨어 쪽이냐 물으니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뭔지 잘 모른다고 답했다. 이 아이에게 내가 너도 안철수같은 위대한 사람이 되라고 말하는 게 합당한가?

원대한 꿈은 인생의 좌절을 더 크게 맛보게 할 수 있다.
위인전을 많이 읽은 아이가 평생 과대망상증에 시달릴 수 있다.
내가 해 준 말은 앞으로는 네트워크 보안쪽이 인력이 많이 필요할 거라는 이야기와 태권도를 오래 했으니 알바도 쉽게 할 수 있겠다 라고 독려한 정도이다.

왜, 그게 나쁜가?
먹고 사는 데 지장 없으면서 자기 하고 싶은 운동도 지속할 수 있으면 그게 최고 행복 아닌가?

힘이 빠져 지쳐 자빠져 있는 사람에게 왜 못 일어나냐고 욕을 하면 어쩌자는 건가.
숨 쉬고 조금만 일어나보라고 손만 잡아보라고 거기까지만 하라고, 그 다음은 스스로 점진적으로 나아지겠거니 희망을 좀 가져주면 안되나.
당장 일어나서 정신차리고 마라톤 나가라고 하는 게 옳은가.

모두 다 일어나 걸어야 한다고 말하지 마라.
욕심없이 살고 싶은 사람도 많다.
경쟁하고 싶지 않은 사람도 많다.
대학가기 싫고 공부하기 싫은 아이들도 있다.
원대한 야망 따위 없이 그냥 하루종일 방바닥을 굴러다니면서 사는 게 꿈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그렇게 무가치한가.

한비야씨는
“죽지 못해 살아남기 위해 스펙 쌓으며 살기에는 인생이 너무 아름답고 멋지잖아요?” 라고 말했지만,
죽지 못해 살아남아야만 해서 스펙이라도 쌓으면서 사는 거 조차 너무 힘든 인생도 많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아무리 다시 읽고 생각해도, 나는 그녀의 이야기가, 
“요즘 청년들이 나약해서 군대가서 자살한다” 라고 한 얘기와 자꾸 겹쳐 떠오른다. 

아마도 그녀의 잘못된 기독교 윤리, 인간의 나약함과 긍정의 배신을 절대 인정하지 못하는 편협함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다. 

2012. 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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