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꿈

스트레스를 받을 때 나는 고3이 되는 꿈을 꾼다. 그 꿈속에서 나는 졸업을 하지 못해서 다시 학교를 다녀야 한다.
나보다 어린 아이들과 교복을 입고 노원구 월계동에 위치한 (갑자기 주가를 올리게 된 바로 그 지역) 그 학교로 돌아간다. 담임선생이 나를 아이들에게 소개한다. 이제는 아이들에게 언니라고 부르지 않아도 좋다고 얘기할 수 있는 나이는 지났다. 나는 때로 그 아이들의 담임보다 더 나이가 많기 때문이다.

새해 첫 날
갑자기 스무살 무렵의 여러가지 공기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잠이 들었다.
무엇을 잘못했단 말인가.
그저 나는 남들이 사는 이십대을 지내지 못했을 뿐이다.
매일 출근을 해야했고 더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더 구해야했고 한 달에 한 번씩 구치소에 면회를 가야 했다.

그런데 어제 꿈에는 난데없이 내가 살던 서울 용산구 동자동의 고시원이 나타났다. 빨래를 들고 세탁실 앞에 순서를 시다리고 있었다.
고시원의 낡아빠진, 혹은 낡아빠질 수밖에 없는 세탁기 앞에서 우리는 빨래를 줄을 세워 다른 사람의 빨래가 끝나길 기다렸고 축축한 빨래들을 창문이 없는 방에 널곤 했다.

냄새나는 냉장고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가스레인지가 있는 휴게실도 등장했다.

잠에서 깬 나는 내 마음 어디가 아픈가를 하루종일 생각했다.

시간이 가서 그렇다.
나이를 먹어가고 아이들이 자란다.
아이들은 자라면 떠난다.
내가 부모를 떠난 것처럼.

큰 아이는 성인식을 할 것이고 더 이상 인생이 버겹지 않은 날 술도 마실 것이다. 작은 놈은 어느 날 밥상머리에서 나에게 조숙한 잔소리를 해댈 것이다.

남편의 귀밑머리는 더 이상 하얗게 될 자리조차 남아있지 않다.
싱그럽던 스물 셋의 후배들이 서른을 넘겼다. 아이들이 엄마가 되고 시간은 지난하게 흘러간다.

삶이 지리멸렬하다고 불평할 시간따위도 주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분주하게 일상을 살아내야 하고 이 시간이 지나가기를 소원하며 버티고 있다.

그리하여
흙을 밟은 지 너무 오래된 것은 아닌가 생각하는 것이다.
모두가 잠든 한 밤에 궁색해지는 신체를 탓하면서도 깨어있는 것이다.

사람은 겪어야 할 일이나, 먹어야 할 음식이 정해져 있다는 글을 읽었다.

정말 나는 너무 오래 걷고 뛰고 서 있었다. 이제는 앉아서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쉬고 싶다.

2012.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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