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틀로얄이 오고 있다.

1. 


심각해지는 학급붕괴와 범죄에 노출된 청소년들을 이런 혼란상을 이겨 낼 수 있는 강력한 생존 능력의 소유자로 만들기 ‘신세기교육개혁법(BR법)’이 공표된다. BR 법은 전국의 중학교 3학년 중에서 매년 한 학급을 행동범위가 제한된 일반인이 없는 장소에 이송하여 한 사람씩 지도와 일정의 음식, 그리고 여러 가지 무기중 한가지씩을 나눠 주고, 마지막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서로 죽이게 한다는 법률이다. 제한 시간 3일 동안 위법 행위에 구애받지 않고 서로를 죽이되, 규칙을 어길 경우에는 툭수 목걸이가 폭파하여 목숨을 잃게 된다. 수학여행을 위장하여 무인도에 도착한 학생들은 마치 게임처럼 진행되는 상황에 경악하지만, 생존을 위해 결국 서로의 목숨을 빼앗기 시작한다.

– 이 글은 영화 배틀로얄에 대한 포털사이트 다음의 영화소개에 적힌 줄거리이다.
심각해지는 학급붕괴와 범죄.

옴진리교 사린가스테러 사건 이후
97년도에 사키키바라 살인사건이라는 (중학생이 초등학생을 살인한 사건 – 이후 범인은 2005년 풀려났다)  엽기적인 사건이 있었다.

http://blog.daum.net/holongbool/8106 (참고할 만한 블로그 포스팅)

배틀로얄은 2002년도 작품이다.
이 당시 일본은 이지매라 불리는 집단  따돌림 현상과 그 원인과 형태를 짐작할 수 없는 일명 “묻지마”살인사건의 유형이 아이들을 공격하고 있는 시점이었다.

최근 벌어진 대구의 한 중학생의 자살사건, 집단 따돌림 폭행으로 지적장애가 생긴 여학생의 사건, 집단성폭행의 후유증으로 고통받는 사건 등, 헤아릴 수 없는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다.
게다가 어제 보도된 바로 이 사건

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1112/h2011122816580921950.htm

문제가 되는 줄 몰랐다. 집주인이 출국한 사이 현관비밀번호를 알고 들어간 아이들이 무단침입으로 남의 집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놓았다는 것.

2.

얼마 전 눈이 온 다음 날 작은 아이가 놀이터에 나가 놀다가 초등학생 여자아이 둘과 함께 어울렸다.
작은 놈은 오늘부로 7살이 되었고 누나들이라고 좋아하며 노는데 지켜보니 떨어진 모자도 씌워주고 아이들이 동생이랍시고 잘 챙기는 듯 해서 기특하다 생각했다.
아들이 누나들이랑 우리집에 놀러가면 안되냐고 물어 집에 데리고 들어와 추운데서 놀았으니 장갑도 말리고 따뜻한 거 한 잔 마시고 가거라 하고 집이 어디냐 물으니 조금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집에 몇시까지 가야하느냐 묻고 엄마가 안 기다리시느냐 물으니 3시까지 가면 된다고 정확한 시간을 말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와 우유를 덥혀 코코아를 타줬는데 마침 남편이 퇴근을 했고 (토요일이었다) 아저씨가 오셨으니 조금만 놀고 돌아가거라 라고 했는데 아이들은 노느라고 그 말을 잊었다. 그렇다고 당장 쫓아내야 하는 것은 아니었으니 시간을 좀 더 주기로 하고 남편이 사온 분식을 나눠 먹이고 작은 아이 방에서 같이 놀게 했는데

남편이 거실에 앉아서 쉬는 사이 이 아이들은 마치 자기네 집인양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피아노를 쳐도 되느냐 안마의자를 하고 싶다는 등 나를 당황하게 하는 요구를 해왔다.
아이들은 초등학교 3학년이었고 휴대폰도 가지고 있었다.
각자 엄마들에게 전화를 해서 여기가 어딘지를 알리는 똑똑함을 보였으나 남의 집에 가서 해서는 안되는 일 예를 들어 “냉장고를 함부로 열어보지 않는다”, “안방은 집주인의 허락을 받고 들어가야 한다” 등의 기본적인 예절은 습득하지 못한 것 같았다.

나는 아저씨가 퇴근해서 쉬고 계시니 방에서만 놀아야 한다고 얘기했다.
너무 쫒아다니면서 제재를 가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 사이 이 아이들은 우리 아이랑 같이 갖고 논 모래놀이 통을 닦겠다고 안방 화장실에 들어가 통을 닦고 드라이기를 꺼내 말리기까지 했던 것. 목욕탕에서 드라이기를 함부로 사용하면 큰 일이 나는 것인데 나에게 허락을 받거나 묻지 않고 여섯살 난 아들에게 물어본 것이다.

아이들은 시간이 되었다며 돌아갔고 놀이터에서 아들과 조금 더 놀다가 갔다.
나는 집에 들어온 아이에게 그 누나들이 너랑 잘 놀아서 좋았는데 집안에서 함부로 행동하는 듯 하니 다음에 다시 만나더라도 집에 놀러오는 것은 좀 곤란하겠다 라고 말했다.
아이도 그런 거 같다고 대답했다.

3.

요즘 길을 지나거나 아파트 단지를 지나치다가 멀리서 초등학생쯤 되는 아이들에게 내가 큰 소리로 야단을 치는 일이 생긴다.

담을 넘으려는 아이들에게 어딜 넘어다니냐- 하고 소리를 치면 대부분 부리나케 도망을 가긴 한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숨바꼭질을 하는 아이들을 발견하고 여기서 이러면 위험한데 뭣들 하는 짓이냐 라고 했을 때 뭐가 문제냐는 듯이, 저희 여기 안살아요 하고 더럽고 치사하다는 듯 자리를 피해버리는 아이들,

차도에서 롤러브레이드를 타는 아이를 야단쳤을 때는 대꾸도 하지 않았다.

아이들 놀이터에서 담배를 피우는 고등학생 남자애들에게 흡연구역에 가서 피우라고 했을 때는 당신이 뭔데 라는 표정으로 대놓고 계속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눈에 띄면 띄는대로 야단을 치게 된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다 내 자식같고 몇 다리 건너면 다 내새끼 친구겠거니 하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주변에서 하도 나에게 위험하다고 주의를 줘서 고등학생 쯤 되는 큰 아이들이 세명 이상 몰려 있을 때는 경비아저씨를 부르거나 다른 수단을 강구하긴 한다.

길에서 마주치는 초등학생 이상의 아이들은
대부분 시간 때문에 할머니나 엄마와 실갱이를 한다.
몇시까지 학원을 가야 하고 학원 갔다가 다른 학원을 가야 하는데 가방을 안 가지고 왔다는 등의 문제다.

엄마들은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 너 지금까지 학원 안가고 왜 집에 있냐고 하기도 한다.
엄마는.. 어디 다른 볼 일을 보러 가야 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니까 대체적으로 아이들은 자기 스케줄을 소화하기 위해 시간을 맞추거나
그 시간 사이에 뭘 먹거나 다른 일을 볼 수 있다는 시간에 대한 계산에 능숙하고
엄마에게 행선지를 알리거나 도착했다고 전화를 하는 일에도 노련하다.

그런데 이 아이들의 취약점은
해서는 안되는 일과 해도 되는 일의 범주를 잘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집에서는 공부하느라 피곤하니까 라고 넘어가기 일쑤이고
시간에 쫒기고 집에 와선 스트레스를 푼다고 게임이나 티비에 열중하다 보니
많은 사람을 만나고 인사를 하고 예의바른 행동을 하고 남의 집에 가서 해서는 안되는 일과 해도 되는 일들에 대한 꾸중을 듣고 반성을 하고 행동을 교정할 시간따위는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많은 어른들이 아이들이 안스러워서 몇 가지 실수를 그냥 넘어가거나
중학생 이상의 아이들에게는 그 아이들의 폭력성 성향을 익히 들었기 때문에 모르는 척 외면한다.
아무도 아이들에게 뭐가 옳고 그른지 가르쳐 주지 않는 사회가 되어가는 건 아닐까.

남의 집의 현관비밀번호를 알고 불쑥 들어가는 일에 유연한 사회,
사실 주변에도 친구네 집 비밀번호를 알고 있는 일은 허다하다.

그래서 친구네 집에 들어가 이런 난장판을 벌이더라도 괜찮은가보다. 라고 뻔뻔하게 굴 수 있는 것일까.

아이들이 수치심을 느끼지 못한다.
부끄러움을 모른다.
내가 잘못한 일인가, 그게 왜 벌을 받아야 하는 일인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있었던 예를 하나 들어볼까
아파트 단지에서 내내 화단의 풀을 잡아 뽑으며 걷는 남자아이를 본 시동생이 이건 우리 모두의 것이니 그렇게 함부로
대하면 안된다고 말했단다.
그러자 그 아이가 한다는 대답이
저희 집은 전세 사는데요.
분명 초등학생이었단다.

우리는 높아지는 집값과 먹고 사니즘과 그로 인해 너희들도 안정된 직장과 연봉 얼마가 인생의 척도가 된다는 얘기를 아이들에게 너무 많이 노출하고 있는 건 아닌가.

전교 1등도 술마시고 담배 피워요.
전교 1등 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라는 아이들의 답변에
우리는 정말
“그 따위 전교1등은 개나 줘버려”라고 답할 수 있는가.

내 친구를 죽였어요. 
왜요? 짜증나서요. 
라고 말할 수 있는 아이들이 자라고 있다. 
만만하니까 시켰다. 
그 아이가 싫다고 하지 않아 괜찮은 줄 알았다. 
그래서 성폭행도 하고 폭행도 했다. 
피해자가 거부하지 않으니 좋아하는 줄 알았다. 
어른들의 성폭행과 아이들의 집단 따돌림과 무엇이 다른가 말이다. 

피해자는 극도의 공포상태에서 질려버려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사법부가 인정을 하지 않는 나라에서 아이들에게 그래도 그렇게 하면 괜찮다고 말할 것인가.
너는 강자이니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도 괜찮다고 암묵적으로 지시하고 있는 건 아닌가.

4.

가장 쉬운 계도책으로 나는 학교에서 상황극이나 심리극등을 제안하고 싶다.
그러나 그 얘기를 하자마자 엄마들의 반발이 심할 거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체 이 나라의 엄마들은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아줌마들은 모두 아이들의 성적에 목숨을 걸고 공부 하라고 안간힘을 쓰는 비인간적인 모성들인 것인가.

주변의 내 지인들 중엔 다행히도 무조건 인서울을 가기 위해 아이들을 공부시켜야 한다는 엄마는 없다. 물론 내 주변만 그런지도 모르고 자식의 깜냥따위 신경쓰지 않고 학원 커리큘럼 외우고 다니는 엄마들과 내가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이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문제는 학교가 사회가 문제다 라고 하는 건 학부형들이고 학부형들음 학교와 사회가 문제라고 하는 것이다. 아무도 나서서 해결하려 하지 않고 아이들을 가운데 두고 시간만 보내며 말싸움만 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아이들은 부쩍 자라 괴물이 되어가고 있다.

과연 여론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내가 사는 평촌이라는 곳은 나름 내 기준에선 “사교육의 메카”이다.
그렇다고 경제적 형편이 뭐 대단히 좋아보이진 않는다.
다들 학원비에 허덕이고 조금 부담스러워 하면서도 그래도 두 세개씩 사교육을 시키고 있다.
예체능등의 사교육은 어쩔 수 없다고 치자.
이 아이가 학교공부가 부족해서 어쩔 수 없다고 치자.
영어에 소질이 있으니 영어학원을 보낸다고 치자.
이렇게 따지면 한도 끝도 없다.

두 아이를 기르면서 가만히 보면, 아이들의 천성이나 기질은 정말 달라서 옛 어른들 말씀대로 할 놈은 하고 안 할놈은 안한다.
공부보다 성적을 올리는 데 취미가 있는 놈도 있고 진심으로 책을 좋아하고 지적인 유희를 즐기는 아이가 있는 반면, 머리쓰면 머리가 아프니까 몸으로 하는 일을 더 좋아하는 아이도 있다.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을 수는 없는 거 아닌가.

이 아이는 조금만 더 하면 잘 할꺼야. 라는 부모의 속단속에
아이들은 조금만 더 하면 죽어버릴 거 같애. 라고 울고 있는거다.

학원에서 영업상 하는 말 “이 아이는 머리가 좋으니까 조금만 더 시키면 될 거 같아요.”
낚이지 마라. 그게 우리 학원을 면쭉 보내세요. 성적이 안 올라가면 아이가 노력을 안해서 그러는거고 성적이 올라가면 우리 학원 덕분이예요. 라는 말이다.

공부나 성적 올리기에 취미가 있는 아이는 그 쪽으로 밀어주면 되고 그게 아닌 아이는 그 아이의 능력에 맞는 환경에서 살아가도록 새로운 길을 터줘야 한다.

학교에서는 있는 교과목 자습시간으로 돌리는 개지랄 떨지 말고 정확하게 주어진 것들을 가르치고 생각할 시간을 주어야 한다.

정말 어이 없었던 일 하나는 딸아이의 중3 때 담임이란 여자가 (선생이라 칭하고 싶지도 않다) 전화번호를 공개하지 않고, 학교 끝나면 전화기를 딱 꺼버리고 이메일 주소를 달라니까 이메일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발뺌하더니 결국 학년을 마치지 않고 중 3 아이들 입시 1달 전에 남편이 미국으로 발령이 났다며 인사도 없이 학교를 사직했다.
이런 선생. 하루 빨리 그만둬 주면 고맙다.

아이들이 성적을 올리고 학교의 위상을 드높이면, 모교를 아름답게 빛내는 게 아니라 교직원 이상 교장이나 이사장의 위상을 드높여 주는 것이니 남의 승진에 악용당하지 말고 주관적으로 대처해 나갔으면 좋겠으나. .. 쉽지 않다는 건 알고 있다.

아이들이 문제라고 제발 말하지 마라.
우리가 문제다. 이건 우리 모두의 문제다.
가르치지 않았으면서 배우지 않았다고 욕하는 건 무슨 심보인가.
아이들을 살펴보라.
이 아이가 얼마나 아픈지, 무엇이 답답한지,
내 아이가 수치심에 대해서 알고 있는지, 많이 말하지 말고 많이 듣고 꼼꼼하게 살펴야 한다.
내 새끼만 쳐다보니 말고 남의 새끼도 좀 쳐다보라.
쓰레기를 버리는 아이가 있으면 불러서 휴지통에 넣으라고 말하라.
성적이 잘 나온 것을 칭찬하지 말고 올바른 행동을 한 것을 칭찬하라.

젠장.
내가 지금 왜 이딴 소리를 지껄이는지도 모르겠다.

큰 아이는 이제 고2가 되고 곧 있으면 사회인이다.
난 이 아이가 지옥의 학창시절을 마치는 것이 오히려 다행스럽다.
그리고 본인도 슬픈 시절을 지냈으나 무사히 목적지까지 거의 다 온 것에 감사한다.

그러나 큰 아이의 졸업과 동시에, 작은 아이가 학교에 간다.
차라리 아이들이 학교를 거부했으면 속이 시원하겠다.
안간힘을 쓰고 적응하려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마음이 답답하다.

학교는 정말, 변할 생각이 없는가.
정부는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니들 밥그릇 생각 그만하고 일을 해다오. 일을.

5.

배틀로얄이 영화 같은가.
이 나라에서 펼쳐지고 있다.
우리 모두가 한꺼번에 전쟁터로 나서고 있다.
그렇게 전쟁하는 게 좋으면 아프리카 내전지역 가서 자원봉사나 하든가.

2012.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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