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의 과정

오전,
휴대폰을 급하게 열어 메모장을 폈다.

“이해하고자 하지 않으면 세계는 고립된다.”

이 말을 적은 이유는, 오늘 아침 갔던 11시 콘서트에서 옆자리에 앉은 아주머니들이 쉬는 시간에 서울대 김은혜 교수 얘기를 하면서 어디 선생을 고발하느냐.. 는 투의 이야기를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들은 김교수의 인권유린적인 행위에 대해서도 대충 알고 있는 듯 했지만 그녀들의 논점은 김교수의 행위보다 선생을 고발하고 신고할 수 있는 사회분위기에 대해서 적잖이 충격을 받고 있는 듯 했다. 아마 그녀들은 우리 때는 더 했는데 아무 말도 못하고 살았지 뭐.. 우리는 순진했던 거야. 여기서 사고가 끝날 것 같았다.
사유가 거기서 끝나버리면 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

왜 그런 일이 생겼는가. 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해야 철학이 시작되고 사유가 시작되고 세계를 이해하고 세상을 보는 관점이 만들어 지기 시작한다.

박경철의 “자기 혁명”에 낯선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사유라는 말이 나온다.
뭔가 생경한 것, 낯선 것, 익숙치 않은 것에서 사고가 시작된다.
사유를 끊어버리는 것은 바로 사유하는 자의 뇌다.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은 원죄론적 인간형이다.
세상은 다 그런 것이고 나는 언제나 당하고 살았으며 적당히 체념하며 살아가는 것.
그것에 익숙해진 인생이다.

살다 보면, 많이들 그렇게 된다.
먹고 살기 지쳐서, 세상 풍파에 내 식구를 감싸기 바빠서.
그러나 아주 쉽게 말하면, 부지런하지 않아서이다.
머리를 열심히 쓸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해하지 않으면 세상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늘어간다.
다른 세대를, 다른 인생을 이해하지 못하면 나는 나의 세계 안에서 은둔하게 된다.
가능성을 가지고 있어야 이해하고자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은 善에서 시작된다.
누군가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그의 행위가 나의 가치관을 무너뜨릴 위험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를 이해해 버리면 나의 가치관과 신념이 무너지고 그로 인해 자존감이 손상될 것 같을 때,
나의 선택에 의심을 하게 되고 그리하여 나의 자부심이 무너질 것 같을 때, 우리는 이해하려는 노력을 거두게 된다.

아주 쉽게 말해 이런 것이다.
“나”는 아이폰이 좋다. 그리하여 아이폰을 구입한 나의 선택에 자긍심을 가지고 싶다. 내 판단이 옳았다고 해야, 그에 상응하는 댓가를 지불한 것에 대해서 나 자신을 쉽게 설득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가격이 비싸다고 한 그 누군가가 있다면 그에게 충분히 설명할 구실이 필요하다. 아이폰의 우수성과 애플의 철학과 애플이 세상을 바꿀 것이며, 이제 고인이 된 스티브 잡스가 시대의 영웅이 되어 주면 설득력은 더욱 큰 힘을 가진다.

여기서 끝나지 않고 누군가 나의 아이폰에 대해서 반격을 가했을 때, 그리고 그가 만일 삼성이나 LG의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너는 나보다 못한 결정을 했기 때문에 너는 바보이고, 너는 멍청하고 내가 너보다 우수하다. 라는 논리를 갖추고 싶은 욕망이 일어난다.
모든 인간은 힘을 추구한다. 타인과 비교하여 우월한 지위, 그것은 사회적이든 감정적이든 상관없다. 모든 인간은 그저 힘을 향해 내달린다. 그건 동물적 본능이다. 힘에 대한 욕구를 폄훼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건 정당한 것이다. 그러나 그 표현 방식은 각자 인격에 따라 다르다.

예를 들어,
오늘 있었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어버이연합의 모욕적인 관 퍼포먼스도 그런 맥락이다.

http://www.vop.co.kr/A00000447906.html

이 자들은 자기들의 가치관을 관철하기 위하여 상대방을 깔아뭉개는 방식을 택했다.
구석에 몰린 쥐는 물게 되어 있다. 이들은 구석에 몰렸다고 “느끼는” 것이다.
아무도 납득해주지 않으나 그들은 그들만의 가치관이 있고 그들만의 세계가 있고 세상이 그것을 알아주길 바란다. 그리하여 힘을 과시하고 싶다. 그들을 조정하는 자가 그 누구이건 간에, 이미 힘이 빠져버린 “노인”으로 폄하되는 그들은 여기에 동참했고 행동했다.

일단 그들은 자신들의 광기를 표현하는 데 성공했다.
이들에게 이 퍼포먼스를 제안한 자는 선동하는 데 성공했다. 적어도 그 집단 내에서는 그렇다.

만일 내가 이들을 이해하려고 한다면,
물론 그들의 행위는 역사적으로 논리적으로 규명이 가능한 과정을 거쳐 발전하였으나, 사고의 발전과정에서 일반화라는 가장 흔한 오류와 사물을 정확히 관찰하고 物과 思의 관념을 정립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오류를 범하였다.
이들의 오류는 인간의 능력을 폄하하는 것이며 인간의 사고력을 비하하는 것이므로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이들은 빨간 모자를 쓰고 군복을 입고 갈쿠리 손을 휘두르던 상이군인회, 재향군인회를 연상케 한다. 이들 중엔 간혹 그런 복장을 고수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집단엔 그 옛날 전쟁에 나가 희생을 하고도 국가에게 정당한 댓가를 받지 못한 것이 억울한 인원들도 중복되어 있을 것이다.

국가는 그들의 원한과 희생에 대한 댓가를 돌려주지 못했고 이들은 끊임없이 분노했다. 이들이 두려운 것은 “내가 팔다리를 희생하며 빨갱이와 싸워 지켜온 이 나라”를 다시 빨갱이에게 갖다 바치려는 세력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믿음”이다. 그 믿음은 이들의 공포에서 시작한다. 내 삶을 다시 전복시키는 공포, 내 팔과 다리를 다시 내바쳐야 할 지도 모르는 공포, 혹은 내 자식을 전쟁터에 내보내 자식잃은 어버이가 될 지도 모르는 그 공포.
철저한 반공교육으로 평생을 지배당한 이들에게 국가는 아무 것도 해주지 않았다.

그러나 누군가 그들을 규합하고 달래고 높이 치하하고 그들에게 일거리를 주었다.
분노하고 궐기하고 반대하고 버스를 타고 부산 영도에 가서 경찰과 비슷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힘을 주었다. 이들은 분기탱천하여 일어날 수 있는 요소가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다.

논리적 이해와 감성적 이해는 다르다.
논리적 이해는 이성적 분석이 동반되지만 감성적 이해는 행위의 용납과 허용까지 포함한다.

내가 만일 이 행위를 논리적으로 이해하고 더 나아가 감성적 이해까지 하게 된다면.

내가 믿고 있던 유교적 윤리관 – 망자에 대한 예의부터 시작해,
노무현이 가져다 주었던 희망과 열망, 청문회에서 명패를 집어던졌을 때의 카타르시스, 저 사람이라면 세상을 바꿔줄 수 있을 것이다 하던 기대감, 그리고 그를 선택하고 지지함으로써 내가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이루어내는 데 작으나마 힘이 되었다는 자부심, 군부와 독재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고 마음껏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지켜야 한다는 가치관과 상충한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국가와 꿈꾸고 있는 국가에 대한 기대 사이에서 심각할 정도로 깊은 괴리감을 느껴 가치관의 위협을 느끼고 있는 그 절정기에 살고 있다.

그러므로 내가 속한 관념의 집단은 그들을 배척하고 저주하여 나의 신념과 가치관을 지키고 “말할 수 있는” 자유를 지키고자 하는 것이다.

그들을 이해하는 것은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왜 그들이 저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었는가와 그렇다면 저들을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서 멈추면 된다. 그들은 인간이 갖춘 이성적인 모든 명예와 숭고함을 쥐똥처럼 던져버렸다.

그리고 하나 기억해야 할 것은 그들에 대한 인간적 연민의 여지는 남겨두어야 한다. 그래야 그들을 설득하고 변화시킬 수 있고 그들을 바라보는 다른 이들에게 무엇이 정도인가 알릴 수 있다.

너도 옳고 나도 옳다는 너의 처지에선 그럴만 하다, 나의 처지에선 이럴만 하다. 라는 뜻이지, 너의 주장도 옳고 그에 상치되는 나의 주장도 옳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세상 모든 사람은 다른 주장을 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그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서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타인의 신체를 훼손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욕을 하며 싸울 수 있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만방에 떨치듯이, 이미 고인이 되어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을 다시 이 똥밭같은 세상에 끌어내려와 짖이기고 못박을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2011. 11. 10.

2013년 대학수학능력시험일
김진숙 지도위원 한진중공업 고공크레인 309일째 농성이 끝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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