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어제와 오늘.

표출되지 못한 언어들이 마구 쏟아진다
정확성을 잃은 감정들이 쓰레기더미처럼 쌓여간다
아이들은 그렇게 거리를 헤매이고 
TV에 나오는 누군가를 모방한다
흠모하진 않으나 가슴속 깊은 곳에 시기심이 있다
내가 저 아이보다 못한 게 무엇이 있느냐는 
바닥을 친 자존감이 솟구쳐 오른다 
아이들은 그렇게 헛된 것을 쫓아 
재빠르게 자존감을 회복할 방법을 찾아 헤맨다
+
딸아이가 애견미용학원을 다닌지 한 달이 된다.
지난 주엔 나와 7년을 산 개의 목욕을 시켰다.
한달만에 능수능란한 관리사가 되었다.
어제의 아이는 사라지고 
어린 시절의 아이가 다시 내 앞에 서 있다. 
케익 하나 사다 주면 헤헤 하고 내내 웃던 보조개와 
스파게티는 이렇게 먹는거라고 가르쳐 주던 나를 보며 부끄럽게 웃던 얼굴로
진작에 좀 .. 이라는 나의 타박에 
눈가가 빨개져도 울지 않는 아이가 되었다. 
그 아이가 아르바이트도 시작했다.
어차피 공부엔 관심도 없고 흥미도 없다. 
아이는 그저 세상에 뛰어들어 인생을 느끼고 싶을 뿐이다.
아르바이트는 비정규직이다.
아이를 낳으면 알바를 많이 시키겠다고 다짐했건만 
막상 내 아이가 알바를 하겠다고 나서니 선뜻 칭찬이 나오지 않는다.
왜 험한 세상을 일찍 배우려고 하느냐. 
조금 더 기다렸다가 만나도 늦지 않는다.
라고 말했지만 
아이는 고개를 젓는다. 
허무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아졌다고 한다.
엄마, 한 걸음을 떼니까 두 번째 걸음이 쉬워요. 라고 말하는 아이의 옆모습에
가슴이 뭉클했다. 
그동안 우리 얼마나 힘들었니.
다 되었다. 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저, 그래, 참 잘 하고 있구나. 라고 
매우 구태의연하고 상투적인 대답을 해주었을 뿐이다. 
누군가의 인생을 보고 
절대 비난하지 말라고 말했다. 
한심하고 불법적인 일을 자행하는 사람이라도 
맹목적으로 비난하지 말고 
항상 측은지심을 갖고 왜 저 사람이 저런 삶을 살아야 하는 가에 대해서 고민하라 했다.
그게 과연 그 사람의 잘못인지
이 사회의 문제인지 잘 살펴보는 사람이 되라 했다. 
그렇다고 해서 지나치게 관용을 베풀어
윤리와 도덕의 기준을 낮추어 너에게 적용시키지 말라고 했다. 
분명히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고 
다가서지 말아야 할 세계가 있고 
접하지 말아야 할 직업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너의 기준, 너의 잣대가 되어야지
남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했다. 
아이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아무도 무시하지 않아요. 라고 대답한다.
엄마는 아직도 .. 제가 그래 보여요? 라고 묻는다. 
아니. 네가 그래 보이는 게 아니라, 
청소년기의 네 나이 또래의 모든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해. 
네 동생이 네 나이가 되면 네 동생에게도 똑같이 말할꺼야. 
며칠 전에 할머니 걱정이 되어 
몸에 좋은 음식을 해드리고 싶어 고민하다가 
도곡동의 한 한의원에 찾아가 상담을 하고 온 것은 
아주 기특하고 훌륭하고 기쁜 일이다. 
근데 솔직히 엄마는, 
진작에 조금이나마, 
늦기 전에 조금이나마. 
조금 덜 아프게 하지 그랬니 .하는 마음이 들어. 
그 날은 좀 화가 났었다. 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아이는 눈가가 벌개지지만 쑥스럽게 웃었다. 
나는 또 아이에게 못을 하나 박은 셈이다. 
말하지 말았어야 했나. 
아니, 
나는 말해야 했다.
후회도 하고 반성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뼈아픈 고통도 느껴봐야 한다고.
다른 사람이 주는 상처보다 
차라리 내가 주는 상처가 낫다고. 
자위하고 싶다. 
아이는 커간다. 
자기의 세계속에서 
다른 사람의 세계를 관찰하고 부딪치고 느끼면서
아주 잘. 자라고 있다.
매우,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만으로 다섯살하고도 6개월이 지난 작은 아이는
요즘 태권도를 다녀오면 뛰어나가 동네 형들이랑 놀기 바쁘다.
엄마 안녕. 
하고 저 혼자 문을 닫고 나가고 
저 혼자 자전거를 타고 엘리베이터를 탄다. 
그러다 간혹, 
엄마가 태권도에 데리러 와. 
라고 말한다. 
왜 데리러 오라고 했어?
아이와 오솔길을 걸으며 물으면
그냥. 이라고 대답하며 내 팔에 제 얼굴을 문지른다.
어두워질 때까지 아이들과 놀다가 
밥먹을 시간이 되면 돌아오는 
나의 작은 아이는,
마치 내가 어린 시절을 지낸 80년대의 아이처럼 저녁을 보낸다.
그렇게 키우겠다고 결심했던 일이 성사되어 
이 역시 감사한 일이다. 
나는 아직 마흔도 되지 않았으나 
동생에게 피부가 탄력을 잃었다는 얘기도 듣고
이제 밤도 새지 못하고
예전처럼 술도 많이 마시지 못하고
가끔 화장실 세면대 거울 앞에서 흰머리를 발견한다.
흰머리를 발견해도 뽑지 않는다. 
이미 남편은 염색약을 써야 할 정도가 된 지가 오래다. 
늙어가는 중이다. 
조금씩 나도 어른이 되고 
아주 조금씩, 늙어가는 중이다. 
스무살 무렵엔 빨리 서른이 되고 싶었다. 
진절머리 나는 질풍노도의 혼란을 지나 서른이 되면 어딘가 안착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막상 30대의 반을 훌쩍 지나고 나니 
이제는 마흔이 되고 싶다. 
그럼 좀 더 많은 사람을 품을 수 있을 것만 같다. 
간혹 그저 세월을 건너뛰어 쉰 정도가 되었으면 한다.
아무에게도 화내지 않고 
아무도 원망하지 않는 나이. 
언젠가 엄마가 쉰 다섯 쯤 했던 말처럼
“이제 이 나이쯤 되면 다 이해할 수 있단다”
나에게 나이는 환상이다. 
내가 먹고 싶은 것은 나이가 아니라 
인격이다.
사람으로서 
가장 인간답고 숭고하게 살다가 
아름답게 기쁜 마음으로 
참 잘 지내었다. 라고 말하며 떠나고 싶다. 
내가 갖고 싶은 것은 아름다운 마무리다. 
악다구니 쓰지 않고 고요하고 평화롭게 이별하고 싶다. 
그 날을 위해서 조금씩 걷는다. 
때론 울고 웃고 욕하고 따지고 생각하고 움직이면서
하루 하루를 산다. 
얼마전 남편이 몇 년전의 나의 습성에 대해서 강한 편견을 갖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라고 생각하지 마. 
당신이 말하는 그 습관은 그 때의 나일 뿐이고 
지금의 나는 그렇지 않아. 
이미 몇 년간 그렇지 않았잖아. 
그리고 덧붙였다. 
나는 매일 매일
어제보다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 
그러기 위해서 살아. 
라고. 
나는 내일,
오늘 보다 조금 나은 사람이 되어 있을거다. 
2011. 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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